17일 발생한 배턴루지 총격 사건 현장 근처에 출동한 경찰관들 [미국 CNN 화면 캡처]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화섭 특파원 = 미국에서 경찰관의 흑인 총격과 흑인의 경찰관 총격이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사회 갈등이 사실상 ‘흑백 내전’의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뿌리 깊은 흑백 차별과 허술한 총기 관리로 흑인 사회와 경찰관 집단 사이의 상호 증오와 공포가 증폭되고, 법 집행의 공정성과 공권력 행사의 효율성이 의심받으면서 다인종 사회의 토대마저 흔들리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께 루이지애나 주 배턴 루지 동남부 올드 해먼드 지역의 한 상가 인근에서 흑인 청년 개빈 유진 롱(29)이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쓰고 매복하다가 경찰관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때문에 근무 중이던 경찰관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으며, 롱 본인도 경찰의 대응 사격으로 숨졌다.

17일 발생한 배턴루지 총격 사건 현장 근처에 출동한 경찰관들 [미국 CNN 화면 캡처]

이 사건은 지난 7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아프가니스탄 복무 미군 병사 출신 흑인 청년 마이카 존슨(25)이 매복 조준사격으로 백인 경관 5명을 살해해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준 지 불과 열흘 만에 벌어졌다.

배턴 루지는 이달 5일 이 도시의 한 편의점 근처에서 CD를 팔던 흑인 노점상인 앨턴 스털링(37)이 백인 경찰관들에게 제압을 당하던 중 총에 맞아 숨진 곳이기도 하다.

5일 스털링이 숨진 데 이어 6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인근 세인트 앤서니 시에서 교통 검문에 응하던 흑인 필랜도 캐스틸(32)이 경찰 발포로 숨진 후 미국 전역에서 경찰관에 대한 흑인 커뮤니티의 감정은 급격히 악화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구호를 외치는 항의시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오클라호마시티 A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수천 명의 시민들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이달 11일에는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을 통해 백인 경찰관을 살해하겠다고 주장한 4명의 남성이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해질 때까지는 누구의 목숨도 소중하지 않다”면서 “모든 백인 경찰을 죽여라”라는 글을 썼으며, 다른 한 명은 “(댈러스의 저격범이) 정확하게 똑같은 일을 하도록 우리를 고무하고 있다”며 저격범을 칭찬했다.

이런 글이 페이스북에 버젓이 올라올 정도로 경찰에 대한 일부 흑인들의 증오가 강해진 데에 대해 미국 사회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1일 일리노이 주의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서는 흑인 경찰관과 흑인 민간인의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신의 집 현관에서 지나가는 차를 향해 총격을 가하던 남성 제이슨 브룩스(41)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2명을 향해 장총과 권총을 발포했다. 경찰관들은 대응 사격에 나섰으며 브룩스는 경찰의 총격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처럼 흑인 커뮤니티와 경찰 사이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2일 경찰관 피격 사건이 벌어진 댈러스를 직접 방문해 통합을 촉구하는 연설을 한 데 이어 13일 백악관에서 주지사·시장, 경찰서장, 흑인운동가 등과 3시간여 회동하고 화합과 자제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경찰-흑인 화합 회동’ 가지는 오바마 대통령과 참석자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바마 대통령은 2014년 8월 비무장 흑인 청년이 피격된 ‘퍼거슨 사태’ 때도 폭동과 항의가 이어지자 비슷한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종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미 CBS 뉴스가 8∼12일 실시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인종 간 불신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최고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NYT는 현재 인종 간 갈등이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관들에게 구타당한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흑백 갈등이 고조되면서 18일부터 나흘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가 폭동과 총격전의 아수라장이 되면서 ‘흑백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도 나온다.

전당대회장 주변에서는 총기 휴대가 허용된다.

이에 따라 트럼프 지지자 중 일부는 전당대회 중 테러가 우려된다며 총기를 소지하고 다니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흑인 과격단체인 ‘신(新) 블랙팬더당’ 회원들 역시 총기를 휴대하고 클리블랜드 도심에 나타나 경찰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시위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현지 경찰은 차량 등을 이용한 테러 가능성에 대비해 시내 주요 도로에 콘크리트 장애물을 설치하고 전당대회장 근처 일부 지역에는 철망을 설치했다. 또 시내 곳곳에 중무장 경찰관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주 방위군과 해안경비대도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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