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과거 보수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댓글공작’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원순 제압 문건’ 등이 논란거리가 되고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잇따르면서 각종 불법행위에 연관된 의혹을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중심에 서게 됐다.

국정원 적폐 청산 과정과 맞물려 시작된 수사가 결국 전직 대통령을 향해 이어지는 모양새다.

19일 검찰에 따르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이른바 ‘박원순 제압 문건’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박 시장은 국정원이 원세훈 전 원장 시절 자신을 ‘종북 인물’로 규정하고 대응 문건을 만들어 실행에 나섰다는 국정원 내부조사 결과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과 원 전 원장 등이 직권남용, 명예훼손, 국정원법 위반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의 사찰이나 공작 대상이 된 다른 피해자들의 고소·고발도 이어질 전망이다.

배우 문성근 씨는 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정원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 참가자를 모으고 있다면서 소송 상대방으로 원 전 원장 외에 이 전 대통령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인 김미화 씨도 검찰에 참고인으로 나와 이 전 대통령을 상대로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과 문화예술계 피해 인사들이 이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국정원의 불법행위 배경에 당시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고, 국정원이 수시로 진행 상황을 보고한 정황이 국정원 내부 문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수시로 ‘좌편향’ 문화예술계 인사의 실태 파악을 국정원에 지시했고, 국정원은 이에 ‘VIP(대통령) 일일보고’, ‘BH(청와대) 요청자료’ 등의 형태로 진행 상황을 보고한 사실을 찾아냈다.

청와대가 국정원의 광범위한 ‘댓글공작’에 관해 보고받고 인지한 정황도 드러난 상황이다.

국정원은 앞선 중간조사 결과 발표에서 2011년 10월 ‘SNS를 국정홍보에 활용하라’는 청와대 회의 내용을 국정원이 전달받고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문건을 토대로 검찰이 ‘국정원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를 적용한 바 있다. 검찰은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 김상률 전 교육문화수석 등과 공모관계에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향후 수사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직접 지시했거나 원 전 원장 등으로부터 불법행위에 관한 보고를 받았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편 검찰은 ‘국정원 윗선’ 수사 확대와 관련해 ‘아직 먼 얘기’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기존 국정원의 ‘댓글공작’과 별도로 민간인을 동원한 댓글 외곽팀 운영과 관련해 새로운 혐의점을 수사 중인 검찰은 아직 원 전 원장의 혐의사실도 모두 규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윗선 수사를 언급한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각에선 검찰이 댓글공작 외에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박원순 제압 문건 등으로 수사 외연을 넓혀가는 상황인 만큼 조만간 칼끝이 이 전 대통령을 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가 필요하면 그게 누구라도 조사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지만, 누구를, 언제 수사할지는 수사를 진행해 봐야 하는 문제”라며 “국정원 수사는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다”라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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