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상하이’민심, 시장주의자 ‘주룽지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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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룽지 상하이 시장 취임식 연설 모습

무너진 시장에 고통받는 시민들, 주룽지 추억

13일 밤, 기자가 참여한 위챗 단체 대화방들에서 주룽지 전 총리의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맥락을 알 수 없는 ‘주룽지 소환’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이내 주룽지 상하이 시장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행위가현 위정자를 향한 우회적인 분노의 표출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시민이 공유한 기사 형식의 글과 사진은 주룽지가 상하이 시장 재직 시절인 1988년 상하이시가 A형 간염 대유행을 극복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었다.

주룽지가 이끈 상하이시가 당시 인구 1천200만명 중 31만명이 감염되는 보건 위기를 두 달 만에 극복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시민은 “나 자신에게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나의 신조는 독립적 사고입니다. 당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말도 꺼리지 않을 것이며, 무슨 결과가 뒤따라도 개의치 않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주룽지의 1987년 상하이 시장 취임식 연설 장면이 담긴 영상을 공유했다.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까지 검열되고 때론 처벌 대상까지 되는 중국에서 이런 ‘인용’은 당국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할 때 쓰이곤 한다.

개혁개방 시대 지도자 가운데 개혁 성향이 특히 뚜렷했던 주룽지는 상하이 시민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지도자다.

그는 장쩌민 국가주석과 짝을 이뤄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이 기간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국영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해 국민에게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 사회주의의 관성을 크게 걷어냄으로써 시장의 영역이 획기적으로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하이 시민들이 오랜 봉쇄로 인한 ‘시장 붕괴’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시장 경제를 깊이 뿌리내리게 한 주룽지가 소환되고 있다는 점도 공교롭다.

상하이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상하이의 시민들이 ‘식량난’에 고통받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방역 목표를 최우선으로 한 나머지 2천500만명에 달하는 시민 대부분을 집에 격리하고는 슈퍼마켓 운영자, 배송원 등 최소한의 민생 지원 인력을 충분히 확보해놓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상하이가 돈과 물품이 없어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다. 대형 마트와 슈퍼마켓, 물류 창고 등지에 쌓인 식료품과 생필품이 유통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정부가 부정기적으로 일부 식료품을 각 가정에 무료로 배급하고 있지만 벌써 18일째에 접어든 봉쇄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그저 시장을 돌려달라고 호소한다.

한 누리꾼은 “우리 상하이는 이런 정부 지원 물자가 필요 없다”며 “지급된 것으로는 하루밖에 살 수 없는데 우리가 직접 야채, 과일, 쌀, 생필품을 사게 해 달라”고 말했다.

옛 지도자의 인기가 현 지도부에 대한 우회적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중국에서 옛 지도자를 대대적으로 띄우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나 더우인 같은 플랫폼에서 은퇴한 전임 지도자들의 이름을 검색하면 거의 유의미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시진핑 국가주석과 관계가 원만치 않다는 소문이 도는 장쩌민 전 주석의 경우 웨이보 검색창에 이름을 넣으면 ‘관련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안내문만 나오는데 이는 그와 관련된 정보 유통이 철저한 관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선대 지도자 덩샤오핑의 유산인 집단 지도체제와 달리 ‘원톱’을 공고히 하려는 시 주석에게는 다른 이도 아닌 주룽지 소환이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주룽지는 시 주석의 원톱 시도에 반대 의견을 피력한 대표적 원로 중 한 명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소식통을 인용해 당 원로들이 집단 지도체계를 깨려는 시 주석을 비판했다면서 주룽지가 대표적 인사 중 한 명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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