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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시위에 구름인파…그들은 무엇에 분노했나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인생이 내게 준 교훈이 있다면 연금을 받기도 전에 병에 걸리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더 일하라뇨. 자식들이 늦게까지 노동에 시달리며 살기를 원치 않아요.”

출·퇴근할 때가 아니면 평소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윔볼트(60·엔지니어) 씨는 19일(현지시간) 오후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겠다는 정부의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오랜만에 딸과 함께 외출하기로 결심했다.

다소 쌀쌀한 날씨에 윔볼트 씨는 손에 장갑을 낀 채로 ’60세에는: (X) 늙고 연금을 받아야 한다, ( ) 늙고 실직 상태여야 한다, ( ) 늙고 죽어야 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현행 제도에 따라 62세에 은퇴하는 것도 너무 늦다는 취지다.

윔볼트 씨는 “주변에 60세 전에 죽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그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지 이런 정책을 만드는 장관이나 고위 공무원들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은 삶이 고단한 노동자들의 어깨에 또 다른 짐을 얹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한 윔볼트(60)씨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한 윔볼트(60)씨

19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만난 윔볼트(60)씨가 ’60세에는: 늙고 연금을 받아야 한다, 늙고 실직 상태여야 한다, 늙고 죽어야 한다’는 항목 중 첫 번째 항목에 체크한 피켓을 들고 있다.

내무부 추산 8만명. 노동조합 CGT 추산 40만명이 집결한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이날 하루 파업을 선포한 8개 주요 노조원 외에도 윔볼트 씨처럼 혼자, 혹은 뜻을 같이하는 가족, 친구, 동료와 삼삼오오 시위를 찾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철도공사(SNCF)에서 기관사로 일하는 앙투안(23) 씨와 매니저로 근무하는 킬리안(21) 씨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연금 제도를 손보겠다며 정년을 늦추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 위해에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킬리안 씨는 “예산이 모자라서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취지에는 분명 동의하지만 왜 정년 연장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돈을 많이 버는 기업과 개인에게 세금을 더 걷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앙투안 씨는 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부자들의 대통령”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좋아하는 기업이나 부자들에게는 폐를 끼치려고 하지 않으면서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만 힘들게 만들려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프랑스 철도공사에 다니는 20대 청년들
프랑스 철도공사에 다니는 20대 청년들

 프랑스 철도공사(SNCF)에서 기관사와 매니저로 근무하는 앙투안(23·왼쪽)과 킬리안(21)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서 근무하다가 석 달 전에 은퇴했으나, 이름을 공개하고 싶지않다고 밝힌 여성(62)은 연합뉴스와 만나 “은퇴하는 시점을 늦춘다는 것은 그만큼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인생을 즐길 시간이 늦춰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년 연장을 하지 않고 세금을 더 내는 것에 찬성하느냐고 묻자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슈퍼리치들에게 세금을 더 걷는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타격이 없을 것”이라며 부자 증세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업 참가자 중에는 앳된 얼굴의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 파리 외곽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샤를르(15) 양은 “나의 미래에도 영향을 끼칠 일인데,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에 수업도 빼먹고 파리에 왔다고 전했다.

노조원뿐만 아니라 비노조원들도 한 데 섞인 시위대는 이날 레퓌블리크 광장을 출발해 나시옹 광장까지 약 3㎞ 거리를 행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와 경찰이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파리에서 38명을 체포했다고 BFM 방송이 보도했다.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한 고등학생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샤를르(15) 양이 19일(현지시간) 오후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리는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샤를르 양은 “지금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이날 수도 파리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에서 112만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했다. CGT는 내무부 추정치의 거의 2배에 해당하는 200만명이 거리에 나왔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마크롱 대통령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정상 회담을 하기 위해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방문했고, 그 자리에서 연금 개혁은 정당하고, 책임감 있는 조치라고 두둔했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트위터에 “시위가 좋은 환경 속에서 열릴 수 있게 한 노조와 경찰에 경의를 표한다”며 “민주주의에서 의견 표명은 필수적이다. 계속 토론하고 설득하자”는 글을 올렸다.

프랑스 주요 8개 노조 단체들은 1월 31일에 두 번째 파업을 결의했으며, 정부가 연금 개혁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1월 23일에도 다양한 행동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내걸린 프랑스 대통령 사진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내걸린 프랑스 대통령 사진

 1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린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얼굴을 붙여놓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윤정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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