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불붙은 옷 벗어던진 채 울던 소녀’ 50년 후…
‘네이팜탄 소녀’ 사진(1972)

“전쟁 참상 알려야”

두 아이 엄마된 사진 속 주인공 “전쟁 공포 기록해줘서 감사”

네이팜탄에 불붙은 옷을 벗어던진 채 울먹이며 도망가는 모습으로 베트남전 참상의 상징이 된 ‘네이팜탄 소녀’ 사진이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됐다.

CNN은 8일(현지시간) 이 사진의 주인공인 판티 낌푹(59), 이 장면을 포착해 세상에 알린 사진기자 닉 우트(71)와 화상인터뷰를 진행해 근황을 전했다.

인연이 시작된 지 50년이 지난 현재, 낌푹은 캐나다 토론토에, 우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낌푹은 우트를 아직도 ‘삼촌’이라는 애정 어린 호칭으로 부른다. 둘은 여전히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같이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엔 함께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네이팜탄 소녀’ 사진 복사본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네이팜탄 소녀' 사진 복사본을 전달한 두 사람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네이팜탄 소녀’ 사진 복사본을 전달한 두 사람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17년 51년간의 AP통신 사진기자 생활을 마무리한 우트는 여전히 분쟁 사진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현재에도 베트남전에서처럼 사진은 지금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늘날엔 여러 출처에서 나온 사진이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그 효과는 과거 신문에 실린 단일하고 상징적인 이미지만큼 강력할 수 있다고 그는 평가했다.

우트는 “베트남에서 사진을 찍었을 때는 모든 게 훨씬 더 느렸다. 소셜미디어도 없었다”며 “사진이 넘쳐나는 지금도 진실을 전달하고 전세계에 알리는 데 사진은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며, 매우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강조했다.

공포에 질려 울던 9살 소녀에서 원숙한 중년의 모습이 된 낌푹은 “50년이 지난 지금, 더는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다”며 “난 생존자고 평화를 위해 일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한때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낌푹은 전세계적인 관심이 실은 한 아이가 감당하기엔 버거웠다고 털어놨다.

의사를 꿈꿔 의대에 진학했지만 공산 베트남정부의 정치적 선전도구로 이용되는가 하면 각지에서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에게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 1992년 캐나다로 망명을 한 이후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 낌푹은 자서전 ‘사진 속의 소녀’를 출간했고 ‘낌 국제재단’을 만들어 전쟁을 겪는 아이들을 도왔다.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유엔평화문화친선대사로 임명돼 전세계를 돌며 평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낌푹은 “이제는 뒤돌아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우트가 역사의 순간을 기록하고 전쟁의 공포를 기록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그 순간은 내 태도와 믿음을 바꿔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꿈을 갖고 살아가게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낌푹은 당시 우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고, 14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전쟁의 자국은 여전히 남아있다.

수년 동안 여러차례의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여전히 화상 부작용을 겪고 있고 최근에는 미국에서 레이저 치료를 받았다.

사진 앞에서 포즈 취해보이는 우트
사진 앞에서 포즈 취해보이는 우트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역사적인 사진은 1972년 6월 8일 당시 21살이었던 우트의 손에서 탄생했다.

당시 북베트남군과 월남군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던 남부 짱방지역의 한 마을에 네이팜탄이 날아들면서 순식간에 불이 번졌다.

낌푹은 공포에 질린 채 불이 붙은 옷가지를 벗어 던지고 1번 도로를 따라 무작정 내달렸다.

이 긴박한 순간은 당시 마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트에 의해 포착되면서 베트남전의 참혹함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원제 ‘전쟁의 공포’ 대신 ‘네이팜탄 소녀’로 더 유명해진 사진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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