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 넓히는 이재용…6년 만에 ‘억만장자 사교클럽’ 참석할까
3

선 밸리 콘퍼런스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

 

 

문재인 정권 5년간 2차례나 구속 수감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새 정부 출범 후 외부 활동의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한미정상 삼성 반도체 공장 안내하는 이재용 부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미정상 삼성 반도체 공장 안내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 부회장은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시찰을 직접 안내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대통령실 주관 재계 행사에도 적극 참석하며 변신을 꾀하는 모양새다.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린 지난 5년간 참석하지 못했던 ‘선 밸리 콘퍼런스’ 같은 국제 비즈니스 행사 무대에도 복귀해 오랫동안 중단됐던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M&A) 행보에 재시동을 걸지도 관심거리다.

◇ ‘억만장자 사교클럽’ 유일한 한국인 초청 인사…5년간 참석 못해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지 선 밸리에서 매년 7월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컴퍼니가 1983년부터 주최해온 국제 비즈니스 회의다.

초청을 받은 인사만 참석할 수 있으며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등 글로벌 미디어와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이 주요 초청 대상자여서 ‘억만장자 사교클럽’으로 불리기도 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빌 게이츠 MS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설립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등 회의 참석자들 면면만 봐도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지명을 따 ‘선 밸리 콘퍼런스’라는 명칭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상무 시절인 2002년부터 거의 매년 이 행사에 참석했지만 2017년부터는 행사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이 사건에 연루된 이 부회장도 핵심 피의자가 됐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문 정부 5년 동안 2차례나 구속됐고, 자연스럽게 ‘선 밸리 콘퍼런스’와도 멀어졌다.

이 부회장이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넘게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쌓은 인적 네트워크는 삼성이 21세기형 글로벌 협력 모델을 통해 비즈니스를 넓혀나가는 발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 밸리 콘퍼런스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선 밸리 콘퍼런스 참석한 이재용 부회장

삼성전자는 애플에 스마트폰 및 태플릿 PC용 반도체를 공급하고, 구글과는 자사 스마트폰인 갤럭시S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하는 등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선 밸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서 굵직한 비즈니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비공개 행사라 이 회의에서 논의되는 내용이 100% 공개되진 않지만, 억만장자들은 서로 교류하며 회사의 M&A나 파트너십 등을 논의한다.

제프 베이조스의 2013년 워싱턴포스트 인수와 디즈니의 1996년 ABC 방송사 인수 논의 등이 선 밸리에서 시작됐다. 사교 행사로 포장된 진정한 비즈니스의 장인 것이다.

이 부회장도 2014년 선 밸리에서 만난 쿡 애플 CEO와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스마트폰 특허 소송을 철회했다.

이 부회장은 구속수감 중이던 2017년 법정에서 “선 밸리는 1년 중 가장 바쁜 출장이고 가장 신경 쓰는 출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이 최근 수년간 대만 TSMC 등 라이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도 이 부회장만이 가진 강력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의 고속성장을 뒷받침해온 대형 M&A가 2017년 초 미국 전자장비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80억 달러(약 9조4천억 원)에 인수한 뒤 뚝 끊긴 것도 이 부회장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이 오랜 기간 소원해진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려면 ‘선 밸리 콘퍼런스’ 등의 사교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협력 시스템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는 21세기에는 기업 총수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 중 하나가 인적 네트워크”라며 “위기에 처한 삼성이 재도약하려면 이 부회장이 가진 막강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끝나지 않은 사법 리스크…정부 지원 등에 업은 TSMC와 대조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법원의 가석방 결정으로 출소하긴 했지만 정상적인 경영활동에는 여전히 제약이 많은 상황이다.

해외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일이 법무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1심 재판도 진행 중이어서 거의 매주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평택 공장 방문이 이뤄진 지난 20일에도 재판 기일이 잡혀있어 행사 참석을 위해 재판부에 불출석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사면된 것이 아니라 가석방 상태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경영에 복귀하기도 어렵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7개 단체는 지난해 9월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규정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출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법 리스크가 있는 이 부회장의 이런 처지는 삼성의 라이벌인 TSMC가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상황과 비교하곤 한다.

대만에서 TSMC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차이잉원 총통이 지난해 11월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자신을 대신해 참석할 대만 대표로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를 임명한 것만 봐도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의 반대로 차이 총통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어려워지자 대만을 대표하는 기업인 TSMC 창업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것이다.

차이잉원 총통과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오른쪽)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차이잉원 총통과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오른쪽)

대만 중앙통신사(CNA)는 차이 총통의 특사인 창 창업자가 대만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6년 취임한 차이 총통은 기술을 중시하고 기업 친화적 가치관을 가진 지도자로 꼽힌다.

그는 2019년부터 반도체 산업의 필수 요소인 금융·세제·용수·전력·인력 지원을 묶은 패키지 인센티브 제공으로 중국 등 해외에 나가 있던 대만 기업들의 ‘유턴 릴레이’를 이끌었다.

정책 시행 2년 만에 해외에 진출했던 209개 기업이 호응했고, 이들이 대만에 재투자한 돈은 30조 원이 넘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수출이 한국은 16% 증가하는 사이 대만은 100% 증가했고 경제 성장률도 2년 연속 세계 최고를 기록했다.

차이 총통은 특히 반도체 인재 육성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고 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각 대학이 반도체 전공 신입생을 1년에 1번이 아닌 6개월마다 1번씩 뽑고 방학 기간을 조정해 연중무휴로 반도체 인재를 키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전략 산업인 반도체 초격차 유지를 위해 관련 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요청을 전폭 수용해 1년에 두 번 입학생을 뽑는 특단의 조처를 취한 것이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대만은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TSMC를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십분 활용하고 있다”며 “과거 고 이건희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으로 국가에 기여했듯 이 부회장과 삼성이 가진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국익을 위해 바람직한지를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bout the Author: 고지선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