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명 옹 “칠순이 지났을 태종·태성 찾는 데 도움 될까 해서”

현지 한인방송 ‘해피 월드TV’ 조명…’무궁화 할아버지’로 불려

1922년 4월 16일 황해도 황주군에서 태어난 김인명 할아버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북한 사법국에서 근무하다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뒤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한 그는 남쪽에서 만난 부인과 뉴질랜드에 이민했다.

한국 나이 100살의 나이에도 컴퓨터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재봉틀을 이용해 바느질하며 직접 운전을 한다. 그는 최근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뉴질랜드 시민권을 신청했다.

현지 한인방송 ‘해피월드TV’는 김 옹의 사연을 다룬 다큐멘터리 ‘무궁화 할아버지'(www.youtube.com/watch?v=38hO9hr9F3Q&list=UUyLoMB9_ZRWW8UNcYjq0LFw)를 제작해 현지시간 14일 송출했다.

김 옹은 방송에서 “북한에 두고 온 두 아들 태종과 태성을 만나 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70년이 지나도 아들의 이름이 또렷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1951년 전쟁 통에 6사단과 함께 북진하며 가족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이후 ‘곧 오겠다’는 가족과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고 지금까지 가족을 남겨두고 온 그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는 늦게나마 뉴질랜드에서라도 자식들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최근 현지 내무부에 시민권을 신청했다. “가장 큰 소원은 70살이 훌쩍 넘었을 두 아들을 만나보고, 아니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서다.

“생전에 내가 잘 못 처리하고, 잘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고. 용서는 고사하 너희들이 잘살아주는 것이 나를 용서하는 것이니…. 아무쪼록 어려운 세상에서나마 지혜롭게 잘살아다오. 그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김 옹은 “좀 더 바란다면, 하루속히 남북통일은 되지 않더라도 남북이 왕래하고 소식이라도 전할 수 있었으면, 그런 큰 틀이 잡혔으면 더는 바랄 게 없다”고 소망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아들들이 강하게 잘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시민권 신청은 곧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고 방송은 전했다. 김 옹도 이왕 신청했으니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