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요금 역대최대 13%↓…’무제한 요금제’ 경쟁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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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라이즌 로고[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미국의 이동통신 요금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이 23일 보도했다.

해마다 오르면서 미국의 가계 지출에 압박을 가하고 이동통신사들의 배를 잔뜩 불려주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이동통신 부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4월에 1년 전보다 13%나 떨어져 역대 최대의 하락 폭을 보였다. 지수는 5월에도 12.5%가 하락해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물가상승률이 둔화된 한 요인으로 꼽을 정도였다.

요금 급락의 배경에는 시장이 포화상태에 근접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사용되는 휴대전화의 수는 6년 전 전체 인구를 넘어섰으며 전체 인구의 80%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상태다.

많은 미국인들이 복수의 기기를 사용하고 있고 교체 주기도 길어지면서 신규 가입자를 확보할 여력이 줄어들자 버라이즌과 AT&T, T모바일, 스프린트 등 4대 사업자들은 요금을 인상할 능력을 상실했다.

UBS은행의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최대의 사업자인 버라이즌을 비롯해 AT&T와 스프린트가 올해 1분기에 모조리 가입자 이탈을 겪었다. 1분기의 승자는 좋은 조건으로 가입자 유치에 나선 T모바일이었다.

최근 이동통신 요금이 갑자기 하락한 것은 무제한 요금제가 확대된 것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했던 AT&T와 버라이즌이 이를 부활시킨 것이다.

버라이즌은 지난 2월 공격적인 무제한 요금제를 제시한 T모바일과 스프린트로 가입자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재도입했고 그 며칠 뒤에는 AT&T도 가세했다.

이동통신 요금의 인하는 미국 가계부문의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해 6월까지 1년간 미국의 가구당 평균 이동통신 요금 지출액은 1천74달러에 이른다. 이는 10년 전보다 77% 늘어난 것으로 같은 기간의 전체 가계지출 증가율인 13%를 큰 폭으로 웃돈다.

가계 부문에서 이동통신 요금의 인하로 절약된 돈을 다른 용도에 지출할 수가 있다면 휘발유 가격의 인하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것과 같은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요금 인하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에게는 큰 타격이 되고 이다. UBS의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업계 전체의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 상승에 그쳤다.

컨설턴트인 셰탄 샤마는 데이터 요금제에서 얻는 사업자들의 분기별 매출액이 지난 17년간 단 한번도 빠짐없이 증가세를 지속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0.33%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여건이 악화되자 이동통신 업계에서도 분주하게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버라이즌이 야후와 AOL를 인수한 것이나 업계 2위인 AT&T가 타임 워너를 인수하려는 것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의도다. 최근 업계 3, 4위인 T모바일과 스프린트가 합병을 다시 논의하고 있는 것도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차원이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T모바일과 스프린트가 합쳐 3자 구도로 가게 된다면 요금 인하 경쟁을 종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3위 사업자들의 점유율이 엇비슷해져 요금 인하보다는 현상 유지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T모바일과 스프린트의 합병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TC)가 독점 심화를 우려해 업계의 구도 재편에 번번히 제동을 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FTC는 2011년 AT&T와 T모바일의 합병안을 승인해주지 않았고 그 3년 뒤인 2014년에는 T모바일과 스프린트가 추진하는 합병계획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결국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눈치를 보던 끝에 합병을 철회하고 말았다.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