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이로쿼이 연맹은 어떻게 여러 나라를 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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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무대는 오늘날 뉴욕주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입니다. 이곳에서는 모호크, 오나이다, 오논다가, 카유가, 세네카의 다섯 나라가 평화 연맹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로쿼이 연맹’이라고 부르는 하우데노쇼니입니다. 스스로 부르는 이름인 하우데노쇼니는 ‘긴 집을 짓는 사람들’이라는 뜻…
오늘의 무대는 오늘날 뉴욕주를 중심으로 한 북동부입니다. 이곳에서는 모호크, 오나이다, 오논다가, 카유가, 세네카의 다섯 나라가 평화 연맹을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로쿼이 연맹’이라고 부르는 하우데노쇼니입니다.
스스로 부르는 이름인 하우데노쇼니는 ‘긴 집을 짓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긴 집은 실제로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생활 공간이었습니다. 같은 모계 씨족에 속한 여러 가족이 중앙 통로와 불자리를 중심으로 이어진 공간을 나누어 사용했습니다.
이 익숙한 집의 모습은 연맹을 설명하는 정치적 비유가 되었습니다. 각 나라는 긴 집의 한 공간처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공통 문제는 한 지붕 아래에서 논의했습니다. 함께 살되 각자의 자리를 인정하는 구조였습니다.
서로 싸우던 나라들이 어떻게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을까요.
하우데노쇼니의 구전 전통은 평화 중재자 피스메이커와 하이어와사가 ‘위대한 평화의 법’, 가야네샤고와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연맹의 성립 연대는 구전과 역사 연구, 천문 현상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견해가 다릅니다. 따라서 정확히 어느 한 해에 세워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날짜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어떤 원칙으로 갈등을 멈추고 공동체를 연결했느냐는 점입니다.
위대한 평화의 법은 힘보다 이성과 합의를 통해 평화를 지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오논다가 땅의 대평의회에서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공동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결정을 내릴 때에도 단순히 과반수로 밀어붙이기보다 합의를 중시했습니다.
그만큼 회의가 길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보다, 결정을 내린 뒤에도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들이 그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연맹이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평의회는 외교와 전쟁, 평화 같은 공동 사안을 다뤘습니다. 그러면서도 각 나라와 마을이 내부 문제를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자율성을 남겼습니다. 하나의 연맹을 이루었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똑같아지거나, 각자의 권한을 모두 넘겨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섯 나라의 위치와 역할도 긴 집의 구조로 설명했습니다. 동쪽의 모호크는 동쪽 문을, 서쪽의 세네카는 서쪽 문을 지키는 나라로 비유되었습니다. 가운데에 자리한 오논다가는 평의회의 불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리적 위치와 정치적 역할을 하나의 집이라는 이미지에 담아낸 것입니다.
이 연맹을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성의 역할입니다.
하우데노쇼니 사회는 모계 중심의 씨족 체계를 이루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씨족에 속했습니다. 씨족 어머니는 공동체의 삶을 돌보는 한편, 남성 지도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지도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도자는 개인의 왕좌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씨족과 나라에 책임을 지는 대표였습니다. 지도자를 세우는 일만큼이나 그 책임을 묻는 일도 중요했던 셈입니다.
이를 근대 미국 여성의 참정권과 곧바로 비교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시대와 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성의 권한이 하우데노쇼니 정치 질서의 핵심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연맹의 약속과 관계를 기억하고 전하는 데에는 구전 전통과 함께 왐펌 띠가 사용되었습니다. 조개구슬을 엮어 만든 왐펌 띠는 조약과 관계, 중요한 기억을 확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를 단순한 화폐로만 이해하면 정치적이고 의례적인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평화를 지키는 원칙이 있었다고 해서 실제 정치에서 갈등이 사라졌던 것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일은 있었습니다. 위대한 평화의 법이 강조한 것은 그런 갈등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관계를 회복할 길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의 악순환을 멈추고 함께 숙고하는 절차를 마련했다는 점에 이 연맹의 의미가 있습니다. 합의는 쉽지 않았지만, 함께 남기 위한 기술이었습니다.
18세기 초에는 남쪽에서 이주한 투스카로라가 합류하면서 여섯 나라의 연맹으로 불리게 됩니다. 다만 대평의회의 전통적인 쉰 개 지도자 자리는 원래 다섯 나라 체계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우데노쇼니 연맹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미국 헌법이 이 연맹의 영향을 받았느냐는 것입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을 비롯한 식민지 지도자들이 하우데노쇼니의 외교와 연맹 체계를 알고 관찰한 것은 사실입니다. 1988년 미국 의회도 그 영향에 감사를 표하는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헌법의 어느 조항이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우데노쇼니가 미국 민주주의를 그대로 발명했다고 말하거나, 반대로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역사는 하나의 제도를 그대로 복사해 옮기는 과정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이 만나고, 각자의 상황에 맞게 해석되고 바뀌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우데노쇼니 연맹은 과거에만 존재했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각 나라는 오늘날에도 정치와 문화, 언어 전통을 이어가며 주권을 지닌 원주민 국가로 존재합니다.
긴 집의 지붕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맺은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묻고, 결정을 내린 뒤에도 관계를 이어가는 약속이었습니다.
다름을 없애지 않고 평화를 만드는 법. 하우데노쇼니의 역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전부터 연방과 대표, 합의의 의미를 묻고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는 남동부의 체로키 사회를 만납니다. 일곱 씨족과 강가의 마을, 농업과 회의 정치를 살펴보고, 유럽인의 도착이 그 세계를 어떻게 흔들기 시작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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