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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03편 미시시피 문명과 거대한 도시 카호키아

    kun kwon Park2026년 9월 21일9월 21일
    제03편 미시시피 문명과 거대한 도시 카호키아

    사진: 제03편 미시시피 문명과 거대한 도시 카호키아 관련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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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장면은 서기 1050년 무렵, 지금의 일리노이주입니다. 미시시피강 건너편에는 오늘날 세인트루이스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멕시코 북쪽 최대의 콜럼버스 이전 도시로 알려진 카호키아가 성장했습니다. 뉴욕도 보스턴도 생기기 전, 북아메리카에는 이미 거대한 도시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도시…

    오늘의 장면은 서기 1050년 무렵, 지금의 일리노이주입니다. 미시시피강 건너편에는 오늘날 세인트루이스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멕시코 북쪽 최대의 콜럼버스 이전 도시로 알려진 카호키아가 성장했습니다.

    뉴욕도 보스턴도 생기기 전, 북아메리카에는 이미 거대한 도시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도시 역사를 유럽인들의 정착부터 시작한다면 놓치게 되는 장면입니다.

    유네스코와 국립공원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전성기인 1050년에서 1150년 사이 카호키아의 중심 인구는 약 1만에서 2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주변 마을까지 포함한 ‘대카호키아’의 규모는 더 컸을 수 있습니다. 당시 여러 유럽 도시와 견줄 만한 규모였습니다.

    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만든 것은 높은 빌딩이 아니었습니다. 흙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둔덕, 마운드였습니다.

    한때 약 120기의 마운드가 있었고, 도시 중심에는 몽크스 마운드가 우뚝 서 있었습니다. 바닥 면적은 약 6헥타르, 높이는 약 3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계단형 토축입니다. 6헥타르는 약 6만 제곱미터입니다. 그 넓은 바닥 위에 흙을 층층이 쌓아 올린 것입니다.

    굴착기도 트럭도 없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흙을 바구니에 담아 옮겼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거대한 둔덕은 수많은 사람이 흙을 나르고 다지는 일을 거듭한 결과입니다.

    그 노동량만 보아도 도시의 조직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흙을 가져올 장소를 정하고, 누군가는 작업을 나누고, 또 누군가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야 했습니다. 거대한 마운드는 건축물이면서 동시에 공동체가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몽크스 마운드 꼭대기에는 중요한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주변에는 넓은 광장과 주거지, 방어용 목책이 배치됐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모여 살던 곳이 아니라, 공간을 나누고 중심을 세운 도시였던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통치자의 정확한 직함이나 도시 사람들이 자신들을 무엇이라고 불렀는지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

    ‘카호키아’라는 이름도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 사용하던 이름은 아닙니다. 훗날 이 지역에 살던 카호키아 집단의 이름을 유적에 붙인 것입니다. 원래 도시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곳의 역사가 모두 빈칸인 것은 아닙니다. 고고학자들은 집터와 토기, 음식의 흔적, 매장 방식과 건축물의 배치를 통해 당시 사회를 읽습니다. 글로 적힌 기록이 없어도 사람들이 살았던 땅에는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요?

    핵심은 옥수수 농업이었습니다. 미시시피강 주변의 비옥한 범람원은 농사를 뒷받침했습니다. 강물이 넘나들며 형성한 넓고 기름진 땅이 도시의 식량 기반이 된 것입니다.

    강은 먹을거리와 물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람과 물품이 움직이는 길이었습니다. 육로도 교역망을 이어주었습니다. 조개껍데기와 구리, 돌 같은 물품이 여러 지역에서 오갔습니다.

    도시 안에서는 역할도 나뉘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 물건을 만드는 장인, 종교와 정치의 지도층 등이 있었습니다. 카호키아는 농업과 교역을 바탕으로 여러 역할이 분화된 복합 사회였습니다.

    이곳에는 ‘우드헨지’라고 불리는 나무기둥 배열도 있습니다. 영국의 스톤헨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지만, 이곳에서는 돌 대신 나무기둥을 원형으로 세웠습니다.

    이 기둥들은 해가 뜨는 위치와 계절의 변화를 살피는 달력 기능을 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수확할지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의례를 여는 시기를 정하는 데도 하늘의 움직임이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달력과 시계로 시간을 확인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해와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생활의 시간을 읽었습니다. 다만 우드헨지에서 어떤 의식이 열렸고 그 의식이 정확히 무엇을 뜻했는지까지 모두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번성했던 도시는 왜 쇠퇴했을까요?

    카호키아는 1200년대 이후 축소됐고, 1300년대에는 주민 대부분이 떠났습니다. 기후 변화와 홍수, 자원에 대한 압박, 사회적·정치적 갈등 등 여러 설명이 제시됩니다. 그러나 하나의 원인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큰 도시를 유지하려면 많은 식량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자연환경이 달라지거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흔들리면 도시의 생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카호키아의 쇠퇴는 여러 변화가 겹친 과정으로 살펴야 합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도시가 쇠퇴하고 주민들이 떠난 일과, 사람들이나 그 문화가 사라진 일은 구분해야 합니다.

    미시시피 문화의 전통은 남동부의 여러 원주민 사회와 연결됩니다. 오늘날 원주민 공동체들은 마운드를 조상의 장소이자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 바라봅니다. 무덤과 성지를 단순한 관광 소품처럼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카호키아는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상식 하나를 바꿉니다. 유럽인이 오기 전 북아메리카에는 도시가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도시계획과 대규모 건축, 농업과 교역을 갖춘 중심지가 존재했습니다. 문자 기록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역사를 빈칸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땅에 남은 흔적이 기록이고, 후손 공동체가 전하는 기억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카호키아가 미시시피강 곁에서 성장한 이유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강 주변의 비옥한 땅은 농업을 뒷받침했고, 강은 사람과 물품을 연결했습니다. 여러 생태 구역과 교통로가 만나는 위치는 큰 중심지가 성장하는 데 유리했습니다.

    도시의 마운드도 모두 같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꼭대기가 평평해 그 위에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단상형이 있었고, 길쭉한 능선형과 둥근 원뿔형도 있었습니다. 공공 건축과 의례, 매장 등 쓰임도 달랐습니다.

    따라서 모든 마운드가 무덤이었다고 생각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모양과 위치, 주변에서 발견되는 흔적을 함께 살펴야 그 역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흙으로 지었다는 이유로 건축 기술이 낮았다고 평가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재료가 다를 뿐, 거대한 구조물을 안정되게 만드는 일에는 지식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흙을 고르고 운반하고 다져야 했습니다. 건축물과 광장의 위치를 정하려면 측량과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일하려면 노동을 조직하고 식량을 공급해야 했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몽크스 마운드의 규모는 당시 사람들이 갖췄던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카호키아 주민들을 오늘날 어느 한 부족의 조상이라고 지정할 수 있을까요?

    그 관계를 하나의 직선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원주민 민족이 미시시피 문화권과 역사적·문화적 관계를 지닙니다. 고고학에서 사용하는 문화 이름을 오늘날의 특정 부족 이름과 곧바로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연구와 유적 관리에는 후손 공동체의 참여가 중요합니다. 유적에서 무엇이 발견됐는지뿐 아니라, 그 장소가 오늘날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카호키아의 도시 생활은 끝났지만, 사람들의 지식과 관계까지 그곳에 멈춘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여러 공동체 속에서 삶과 문화를 이어갔습니다.

    거대한 흙 둔덕 앞에 서면 우리는 오래전 북아메리카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농사를 짓고 교역을 하고, 하늘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수많은 사람의 힘을 모아 도시를 만든 사회입니다.

    카호키아는 유럽인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이 땅에 복잡하고 풍부한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 역사는 흙 속에 남아 있고, 오늘을 살아가는 원주민 공동체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건조한 남서부로 떠납니다. 비가 귀한 땅에서 수백 개의 방을 가진 건물을 세우고, 먼 지역과 길을 연결했던 사람들. 차코와 메사버드의 푸에블로 공동체입니다. 흙과 돌, 물과 지혜가 만든 마을을 찾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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