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열전, 워싱턴 세 번째 시간. 수요일은 "결정의순간", 그 사람을 만든 하나의 장면을 깊게 봅니다.
워싱턴의 결정은 두 번 있었고, 둘 다 같은 내용입니다. 가질 수 있는 권력을 갖지 않는 것.
1782년 5월, 뉴욕 뉴버그. 전쟁은 사실상 이겼지만 평화조약은 아직이었어요. 병사들은 몇 년째 월급을 못 받았고 의회는 무력했습니다.
루이스 니콜라라는 대령이 총사령관에게 긴 편지를 보냅니다.
요지는 이거였어요. "공화정은 안 된다. 의회는 무능하다. 장군께서 왕이 되어주십시오." 군대가 뒤에 있으니 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워싱턴은 당일 답장을 씁니다. "전쟁 내내 이보다 더 고통스럽게 읽은 글은 없었다. 내 어떤 행동이 이런 제안을 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다시는 이런 생각을 입에 올리지 말라."
세계사를 놓고 보면 이상한 반응이에요. 카이사르, 크롬웰, 그리고 나중에 나폴레옹까지, 이긴 장군은 왕이 되는 게 정상이었습니다. 워싱턴이 예외였어요.
1783년 3월,
이듬해 3월,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장교들 사이에 익명의 문서가 돌아요. 의회가 돈을 안 주면 무기를 들고 필라델피아로 가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상 쿠데타 모의예요.
3월 15일, 워싱턴이 장교 회의에 예고 없이 나타납니다. 준비한 연설을 읽었어요. 인내하자, 의회를 믿자. 그런데 반응이 차가웠습니다. 다들 지쳐 있었으니까요.
그는 의회 의원이 보낸 편지를 읽겠다며 종이를 꺼냅니다. 그리고 멈춰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씁니다. 장교들은 총사령관이 안경 쓰는 걸 처음 봤어요.
그가 말합니다. "여러분, 양해해 주십시오. 나라를 위해 일하느라 머리가 하얗게 됐는데, 이제 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방 안의 장교들이 울기 시작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어요. 쿠데타는 그 자리에서 끝났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순간을 미국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날로 꼽습니다. 군대가 정치 위에 서지 않는다는 원칙이 여기서 세워졌어요.
**1783년 12월, 검을 돌려주다
12월 23일, 메릴랜드 아나폴리스. 의회 앞에서 그는 총사령관 임명장을 반납합니다. 짧은 연설 끝에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이제 공직에서 물러나 사적인 삶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운트버넌으로 말을 몰아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에 도착합니다. 8년 만의 귀향이었어요.
이 소식이 런던에 전해졌을 때, 영국 왕 조지 3세가 미국 화가 벤저민 웨스트에게 물었습니다. 워싱턴이 이제 뭘 할 것 같냐고. 웨스트는 "농장으로 돌아갈 겁니다"라고 답했어요.
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자기 나라를 이긴 적장에게 한 말이에요.
** 1796년, 두 번째 사양
어제 말씀드린 대로 그는 다시 불려 나와 대통령이 됐고, 8년을 일했습니다. 1796년, 세 번째 임기 앞에 섰어요.
헌법에 연임 제한이 없었습니다. 원하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었어요. 국민 대부분이 원했고요. 그런데 그는 첫 임기 끝날 때부터 그만두고 싶어 했고, 두 번째는 주변의 간청으로 억지로 한 거였습니다.
1796년 9월 19일, 필라델피아 신문에 긴 글이 실립니다. 우리가 고별 연설이라고 부르는 글인데, 실제로 연설로 읽은 적은 없어요. 신문에 실은 편지였습니다.
핵심은 세 가지예요. 첫째, 나는 물러난다. 둘째, 정파로 갈라지는 것을 경계하라. 셋째, 외국과 영구적인 동맹이나 적대에 얽히지 말라. 이 글은 지금도 매년 미국 상원에서 의원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합니다.
두 번 임기 후 퇴임이라는 전통은 그 뒤 144년 동안 아무도 깨지 않았어요.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4선을 하자, 1951년 헌법 22조로 아예 법에 적어 넣습니다.
그가 만든 건 법이 아니라 습관이었어요. 힘 있는 사람이 스스로 물러나는 습관. 그 습관이 법보다 오래 갔습니다.
**신시내투스라는 별명
당대 유럽 사람들은 워싱턴에게 별명을 하나 붙였어요. "미국의 신시내투스." 고대 로마의 장군 킨키나투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 사람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농사짓던 밭을 떠나 군대를 지휘해 승리하고, 권력을 쥘 수 있었는데도 다시 밭으로 돌아간 인물이에요.
실제로 1783년 은퇴 소식이 퍼지자, 미국 전역의 참전 장교들이 신시내티 협회라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 이름 자체가 킨키나투스를 기리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오하이오주의 도시 신시내티가 바로 이 협회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워싱턴이 세운 원칙 하나가 미국 지도 위에 도시 이름으로까지 남은 셈입니다.
유럽 지식인들은 이 이야기를 믿기 어려워했어요.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들, 그리고 나중에 나폴레옹까지도 워싱턴의 이 선택을 두고두고 이야기했습니다. 권력을 스스로 내려놓는 사람이 실존한다는 것 자체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신선한 사건이었던 거예요.
오늘은 워싱턴의 결정의 순간, 두 번의 사양이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그늘과 사람". 이 위대한 사람의 농장에는 300명이 넘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틀니, 그의 아내, 그의 마지막 밤 이야기까지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