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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번째 이야기- 마운트버넌의 300명

    kun kwon Park2026년 9월 21일9월 21일
    네번째  이야기- 마운트버넌의 3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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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운트버넌의 300명 그늘과 사람 — 노예, 틀니, 마사, 그리고 마지막 밤 미국 대통령 열전, 워싱턴 네 번째 시간. 목요일은 "그늘과 사람"입니다. 동상 뒤에 있는 사람을 봅니다. B어제까지 들으셨으면 거의 성인 같은 사람이죠. 오늘은 불편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317명 노예 1…

    마운트버넌의 300명

    그늘과 사람 — 노예, 틀니, 마사, 그리고 마지막 밤

    미국 대통령 열전, 워싱턴 네 번째 시간. 목요일은 "그늘과 사람"입니다. 동상 뒤에 있는 사람을 봅니다.
    B어제까지 들으셨으면 거의 성인 같은 사람이죠. 오늘은 불편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317명 노예
    1799년 워싱턴이 죽었을 때, 마운트버넌 농장에는 317명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중 123명이 그의 소유였고, 나머지는 아내 마사가 첫 결혼에서 물려받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는 열한 살에 아버지 유산으로 노예 열 명을 받았습니다. 평생 노예 소유주였고, 도망친 노예를 잡으려고 광고도 냈어요. 대통령 재임 중에도요.
    1796년 필라델피아에서 마사의 시중을 들던 스물두 살 오나 저지가 도망칩니다. 뉴햄프셔로 갔어요. 워싱턴은 사람을 보내 돌아오라고 설득합니다.
    오나가 한 말이 남아 있어요. "돌아가면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자유였다." 그녀는 끝까지 돌아가지 않았고, 워싱턴도 끝내 강제로 잡아오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해에는 요리사 허큘리스도 도망쳤어요.
    그런데 이 사람 안에서 뭔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독립전쟁 때 흑인 병사들과 함께 싸운 뒤로, 편지에 노예제를 "언젠가 끝나야 할 제도"라고 쓰기 시작해요.
    그리고 유언장. 자기 소유 노예 123명을 마사가 죽으면 모두 해방하라고 썼습니다. 늙고 병든 사람은 농장이 평생 부양하고, 아이들은 읽고 쓰기를 가르쳐 스물다섯까지 직업을 익히게 하라고요. 건국의 아버지들 중 노예를 해방한 사람은 그가 유일합니다.
    마사는 남편 뜻보다 일찍, 1801년에 해방시켰습니다. 자기가 죽어야 자유가 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게 두려웠다는 말도 전해지죠.
    그래서 어떻게 봐야 할까요. 평생 사람을 소유했고, 죽으면서 풀어줬다. 둘 다 사실이에요. 역사는 한 사람을 한 줄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 틀니, 그리고 아이 없는 아버지
    조금 가벼운 이야기로요. 워싱턴은 스물네 살부터 이를 잃기 시작해서 취임할 때 남은 이가 한 개였습니다.
    나무 틀니였다는 건 사실이 아니에요. 하마 상아, 소 이빨, 그리고 사람 이빨로 만들었습니다. 사람 이빨 중 일부는 노예에게서 산 것이라는 장부 기록이 있어요. 이것도 불편한 사실이죠.
    틀니는 스프링으로 벌어지는 구조라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습니다. 초상화에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이유가 그거예요. 연설도 짧게 했고요.
    그리고 그에게는 친자식이 없었습니다. 마사의 두 아이를 키웠고, 나중엔 그 손주들까지 키웠어요. 미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자기 아이는 없었던 거죠.
    마사는 남편이 죽은 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거의 다 불태웠습니다. 40년 결혼 생활의 편지 중 남은 건 세 통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부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마사가 남편을 세상에서 딱 그만큼만 나눠 주고 나머지는 자기 것으로 가져간 거예요.

    **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의 화
    그는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임기에는 언론이 그를 심하게 공격했어요. 영국과 맺은 제이 조약이 굴욕적이라는 비판이었습니다.
    신문들이 "왕이 되려 한다", "늙고 무능하다"고 썼어요. 제퍼슨 쪽 사람들이 뒤에 있었죠. 내각 회의에서 워싱턴이 신문을 집어 던지며 "차라리 무덤에 있는 게 낫겠다"고 소리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당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실제로는 해밀턴의 연방파 쪽으로 기울었다는 비판도 있어요. 중립을 말했지만 중립이 아니었다는 거죠.
    본인은 물러날 때 이렇게 썼어요. "나는 의도하지 않은 잘못을 많이 했을 것이다. 나라가 그 잘못을 잊어주기를 바란다." 성인이 아니라 지친 사람의 말이에요.

    ** 1799년 12월 14일
    퇴임 후 2년 반, 그는 농장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12월 12일, 눈과 진눈깨비 속에 다섯 시간 말을 타고 농장을 돌았어요.
    다음 날 목이 아프기 시작했고, 14일 새벽엔 숨을 잘 못 쉬었습니다. 의사 셋이 왔는데 당시 치료법이 사혈이었어요. 하루에 몸속 피의 40퍼센트 가까이를 뺐습니다. 지금 의학으로 보면 그게 죽음을 앞당겼어요.
    밤 열 시경, 그는 비서에게 유언장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자기 맥을 직접 짚었습니다. 그리고 죽었어요. 예순일곱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부탁이 있어요. 죽은 뒤 사흘 동안은 묻지 말라고. 산 채로 묻히는 걸 두려워했대요. 세계에서 가장 용감하다던 사람도 그런 게 무서웠던 거죠.

    ** 마운트버넌, 지금도 남은 집
    지금도 마운트버넌은 남아 있어요. 워싱턴 D.C.에서 차로 40분 거리인데,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역사 유적 중 하나입니다. 매년 백만 명 가까이 방문해요.
    재미있는 건 이 집을 국가가 아니라 민간 여성 단체가 관리한다는 거예요. 1850년대에 정부가 관리를 소홀히 하자, 앤 파멜라 커닝엄이라는 여성이 마운트버넌 여성 협회를 만들어 자금을 모아 집을 사들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정부 예산 없이 입장료와 기부금만으로 운영돼요.
    그 안에는 워싱턴 부부의 무덤도 있어요. 원래 있던 가족 묘지가 너무 낡아서, 유언장에 남긴 대로 새 묘지를 지어 옮겼습니다. 지금도 매일 오후 특정 시간에 관리인이 짧은 추모 의식을 진행해요.
    목요일에 다룬 317명의 노예들 무덤도 근처에 있어요. 오랫동안 표시조차 없다가, 1980년대에야 작은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 나라가 그 그늘을 인정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 거예요.

    워싱턴 네번쨰 이야기
     그늘과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시간은  역사학자들이 그를 어떻게 매기는지, 그리고 백 년 전 조선 사람들이 왜 이 사람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읽었는지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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