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짐 크로법의 재림?…퇴장 반세기 미국서 여전한 논쟁
조지아주 등 투표권 제한법 논란…인종차별 문제 다시 시험대
미국의 인종 차별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에서는 노예 제도와 그 잔재인 인종 분리 정책으로 인해 오랜 기간 흑인을 차별하는 제도가 유지되다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그러나 1964년 흑인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에 이어 1965년 흑인의 투표권을 보호하는 투표권법 제정으로 자취를 감추는가 싶었던 흑백 차별 법률이 최근 다시 논란이 됐다.
짐 크로법은 흑인과 백인을 차별하는 법률을 망라하는 용어다.
짐 크로는 1820∼1830년대 백인 배우가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 음악과 율동을 선보인 쇼와 그 인기를 업고 퍼진 유행가에 등장한 흑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는 흑인을 비하하는 말로 널리 사용됐고 이후 흑백 차별법을 통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흑백 차별 문화는 뿌리가 깊다. 인권 보호의 보루인 연방 대법원조차 과거에는 차별을 인정했다.
1857년 ‘드레드 스콧’ 판결이 대표적 사례로, 사법 역사상 최악의 판결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사건은 노예 출신 흑인 스콧이 소송을 낼 자격이 있는지를 다룬 것인데, 대법원은 흑인은 헌법상 시민에 포함되지 않으며 헌법이 시민에게 보장한 권리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흑인의 자유를 부정한 이 판결로 노예제를 둘러싼 남북 갈등이 심화했고 이후 전쟁까지 벌어졌다. 북군의 승리로 노예제는 막을 내렸지만, 인종 차별은 여전했다.
이를 노골화한 것이 남부 주의 흑백 차별법이다. 남부 주들은 노예제 폐지 후 흑인 차별을 유지하기 위한 흑인단속법을 시행하려 했지만, 수정헌법에 가로막히자 다른 여러 법률을 도입했다.
이 와중에 호머 플레시라는 흑인이 인종별로 열차 좌석을 분리한 루이지애나주법을 어겨 백인 칸에 탄 뒤 좌석을 옮기라는 요구를 거절해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1896년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에서 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는 인종 간 평등을 보장하지만, 구분 자체를 폐지한 것은 아니라면서 ‘분리되더라도 동등한’ 기회를 주면 합헌이라고 했다.
이 판결은 흑백 분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도구가 됐다. 이후로도 이어진 흑백 차별에 균열을 낸 계기는 1954년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이다.
캔자스주 토피카에 사는 흑인 중 거주지 인근 백인 학교 입학 신청이 거절된 이들이 교육위를 상대로 낸 소송이다.
대법원은 캔자스뿐만 아니라 사우스캐롤라이나, 델라웨어, 버지니아, 워싱턴DC에서 올라온 유사 사건을 병합, 5개 지역이 시행 중인 공립학교의 흑백 분리 정책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흑인이 부당한 차별에 항의하는 민권운동에 속도가 붙었다.
그 결실로 인종을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1964년 제정됐고 이듬해 투표권법도 제정돼 짐 크로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지난해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한 이후 공화당은 흑인 등 유색인종의 부재자투표를 어렵게 만드는 법률을 추진, 짐 크로법이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조지아주가 만든 투표법을 “21세기의 짐 크로”라고 규탄했다.
NBC 방송에 따르면 47개 주가 투표권 제한을 고려 중이며 조지아주를 시작으로 아이오와, 아칸소, 유타주가 입법을 마무리했다.
논란은 정계를 넘어 경제와 스포츠계로 번졌다. 미 프로야구 사무국은 올스타전 개최지를 투표권 제한으로 논란이 된 조지아주에서 콜로라도주로 바꿨다. 기업들도 비판 성명을 내놓았다.
차별을 철폐해온 역사적 흐름을 되돌리는 시도라는 비판 속에 ’21세기 짐 크로법’을 놓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미국 사회는 다시 시험대에 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