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은 뉴욕타임지 No 1 베스트 셀러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저자와 그의 조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살던 미국의 러스트 밸리에 속하는 오하이오 미들타운과 캔터키 잭슨을 중심으로 미국 동부지역에 위치한 아팔라치아 산맥(Appalachian Mountains)에 살던 백인 사회에서 1997년부터 2013년까지에 걸쳐 일어나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루고 있는데 마지막에 실제 주인공인 저자 가족의 근황까지 소개한다.
힐빌리는 원래는 미국의 중부 아팔라치아 산악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오늘날에는 신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산골 시골뜨기를 가리킨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남부 아팔라치아 산악 지역의 사람들이 부르던 민요를 가리키던 것에서 오늘날에는 컨트리 음악의 한 장르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힐빌리는 도시인들에게 처지고 어느 정도 폭력성 는 시골뜨기들을 비하하는 측면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산악지형 시골에서 형성된 문화답게 자연에 대한 사랑과 존경, 강한 직업 윤리의식,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 가족간의 연대감, 자립정신과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등의 긍정적인 측면도 지닌다고 한다.
이 영화가 특별히 와 닿은 것은 영화 배경이 1997년부터 2013년이니 현재의 우리의 기억 속에도 생생하게 존재하는 현실인 데다가 어떤 면에서는 지역에 따라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우리의 근대사를 살아온 5080들의 한국판 삶의 감정과 가족관계, 자식들의 성장 과정 등이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자서전은 순우리말로 바꾸면 ‘화려한 도회지로 탈출한 두메산골 촌뜨기의 고향 문화와 가족사 회고록’ 정도로 요약되는데 이 영화를 보고 이렇게 칼럼까지 쓰게 된 이유는 뭐 눈에는 뭐 밖에 안 보인다고 지금부터 불과 9년전인 2011년에 미국의 한 젊은이가 겪게 되는 테이블 매너와 와인 문화에 관한 한 단면을 세밀하게 보여주기 때문이고 이것은 또한 필자가 아주 유사한 상황을 1994년경에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서양의 식사와 와인 예절과 문화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은 바람도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 법대에 다니며 부족한 학비를 벌기 위해서 여름 방학 인턴으로 법률 회사에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2011년에 생긴다.
대형 로펌 대표들이 인재들을 영입하기 위해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와서 인턴 신청자들과 최종 면접전에 전야제 비슷한 만남의 자리가 마련된다.
리셉션에서 선 채로 서로 인사도 하고 소개도 하고 하는 자리인데 호텔 종업원이 주인공 JD에게 다가와 레드 와인이나 화이트 와인 중 어느 것을 할 것인지 묻는다.
잠시 당황하며 망설이고 있으니 같이 온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여기 와인 맛있으니 마셔보라고 하니 화이트 와인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종업원이 이번에는 샤르도네인지 소비뇽 블랑인 지를 묻는다.
여기서 일단 리셉션에서 화이트 와인 두 종류 중에 고르라고 하는 것부터가 이 모임에 모인 사람들이 나름 미국사회에서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반대로 얼떨떨해하는 주인공 JD는 이 문화에 처음 접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대비시킨다.
이번에도 역시 몰라서 망설이고 있으니 옆의 사람이 샤르도네를 추천해 준다.
주인공 JD는 모르긴 몰라도 여기서부터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를 하게 되는데 주인공 JD는 일부러 자신이 원하는 대형 로펌 대표의 옆 빈자리를 골라 앉는다.
앉고 보니 테이블 위에는 근사하게 차려진 나이프와 포크 여러 개와 와인 잔과 빵과 물잔이 놓여 있다.
그는 그 도구들을 어떻게 다룰 지 몰라서 당황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느라 제대로 대화에 집중을 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밖으로 나와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상황을 설명하니 와인에 대해서는 가장 드라이한 것을 달라고 하면 된다고 여친이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는 양손을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들어보라고 한다.
그리고는 오른 손은 d이니 드링크(Drink), 왼손은 b이니 빵(Bread)이라고 가르쳐주고 포크와 나이프는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차례로 사용하는 것이고 울퉁불퉁한 나이프는 생선용이고 커다란 스푼은 스프용이고 앞쪽의 작은 스푼은 디저트용이라고 가르쳐준다.
자리에 돌아온 주인공은 여친의 말대로 식탁앞에 앉아서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보고 대화를 하면서 드디어 물잔을 제대로 잡는다.
주인공 JD는 산골 시골에서부터 온갖 잡역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법전문대학원에 진학하여 다니지만 난생 처음 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난생처음 와인을 접하고 고급 정찬을 하게 된 것이니 그에게는 문화적 충격이 큰 상황이었을 것이고 영화는 이 장면들은 아주 정교하게 제대로 묘사해준다.
주인공은 이 처음 접하는 상황때문에 대화에도 깊이 빠져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까지 표현해 준다.
이 장면을 보며 필자가 30대 초반에 소규모 제조업체에 근무하며 인도네시아 국영 비료회사에 산업용 밸브 제조 기술을 수출하려고 만난 현지인과 난생 처음 호텔 레스토랑에서의 정찬 장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에서 남자는 기술을, 여자에게는 가정을 가르쳤기에 대한민국의 보통의 남자들은 서양식 정찬의 매너를 전혀 배운 적이 없었다. 시골 촌뜨기였으니 고급 호텔조차 가본 적이 없었다.
여고생들은 이론으로도 그리고 실기로도 이걸 배울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알지만.
지금도 아마 도시에서는 가정이나 외식을 통해 배우겠지만 시골 출신들은 여전히 취업하고 나서 여친이나 남친을 사귈 때 고급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할 때 말고는 달리 배울 기회가 없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인도네시아 임원을 만나려고 난생처음 호텔에 들어가면서부터 그 으리으리하고 화려하고 웅장함에 놀랐고 레스토랑에 앉아서 못하는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 마당에 인사를 하고 앉아서 식사 주문시간이 되니 와인을 무엇을 마실 거냐고 묻기에 당황했다.
당시 와인이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마셔봤던 마주앙이 전부였기에… 그냥 상대가 좋아하는 와인이면 된다고 얼버무려서 일단 1차 상황은 모면했으나 다음이 문제였다.
식사가 나오면서 여러 개의 포크와 나이프가 눈 앞에 놓여있는데 이것들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라서 옆 테이블을 곁눈질하고 상대방이 먼저 도구를 들면 따라 드는 식으로 상황을 겨우 겨우 넘어가다 보니 실제 비즈니스 대화는 뒷전이 되었고 그 상황을 잘 모면하려고 등골엔 식은땀이 흐르던 기억이 생생하게 오버랩되었다.
그래도 주인공 JD보다 나은 것은 마주 앉아있으니 빵과 물잔의 구분은 처음부터 가능했지만 원탁에 앉은 주인공 JD는 왼쪽 빵이 자기 것인지 오른쪽 빵이 자기 것인지 몰라서 더 당황했을 것이다. 영화는 이 장면을 세심하게 잡아주어 심리적으로 당황하고 있음을 세밀하게 표현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테이블 매너를 가르쳐줄 때 ‘좌빵 우물’이라고 한다. 왼쪽의 빵이 내 빵이고 오른쪽 물잔의 물이 내 물이라고… 영어는 드링크와 브레드로 왼손과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 동그라미를 통해 가르쳐준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 친구의 가장 드라이한 와인이란 가르침은 사실 포도 품종을 묻는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안된다. 어차피 리셉션에서는 드라이한 와인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마 주인공은 품종 단어부터 생경해서 못 알아 들었을 수도 있다.
필자도 이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포도 품종 이름에 당황했었다.
특히나 샤르도네(Chardonnay)와 샤도네이, 메를로(Merlot)와 멀롯이 같은 품종이라는 걸 아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샤르도네는 프랑스 발음이고 샤도네이는 동일한 철자의 영어 발음, 메를로는 프랑스 발음이고 멀롯은 동일한 철자의 영어 발음인데 메를로는 아는데 멀롯을 몰라서, 그리고 샤르도네는 아는데 샤도네이를 몰라서 당황했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중소제조업체 근무시의 이런 트라우마가 있었기에 강남에 와인 아카데미를 만들었을 때 내부 인테리어를 일부러 벽까지 돌로 붙여서 서양의 궁전처럼 고급스럽게 만들었었다.
적어도 나 같은 촌뜨기출신의 소믈리에 지망생들이나 일반 와인 초보자들이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에 주눅들지 않고 일상처럼 받아들이게 하여 이들이 직업 현장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처음부터 당황하거나 기죽고 들어가는 상황은 만들지 않게 하고자 하는 나름의 배려였다.
물론 해외 공급사들에게 약간의 과시 효과도 누리고자 한 면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사실 이건 아주 사소한 작은 목적에 불과했다.
먹고 마시는 일상에서의 문화적 차이는 모를 때는 충격이고 사람의 정신을 빼놓아 원래 만남의 목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콜럼부스의 달걀처럼 알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시시한 것이 된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일상 생활의 문화에도 통한다.
와인과 테이블 매너를 알아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사실 그것 자체는 약방의 감초에 불과하고 실질은 사교든 비즈니스든 만남의 목적과 목표가 따로 있는데 그 실질적인 목적 달성에 충실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면 너무 스트레스가 될까?
필자의 경우는 모르는 것이 스트레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