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이민 당국에 의해 체포·구금됐다 풀려난 한국인 316명이 전세기편으로 조지아주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출발한 11일. 이날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엘러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은 정적(靜寂)이 지배했다.
현장이 위치한 ‘LG로드’는 공장을 건설한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깨끗하고 넓은 4차선 도로다. 그러나 공장 완공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여야 할 각종 중장비는 멈췄고, 넓은 주차장은 자동차 몇 대를 제외하고 텅 비어 있었다.
인기척 없는 현장에는 공업용수를 퍼내는 양수기 소음 말고는 조용하기만 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단속 직후 LG 측에서 공장 건설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공장 건설 현장 옆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메타플랜트, 현대스틸, 현대모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적한 조지아주 서배나 외곽에 위치한 공장 인근 도로는 1년 전부터 출퇴근, 물류 차량으로 인해 교통체증과 병목현상을 겪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도로 소통은 원활했으며, 공장 내 거대한 규모의 주차장은 한적했다.
평소라면 작업교대로 인해 자동차가 가득 차 있어야 할 오후 시간에 거대한 주차장에는 미국인 직원 몇 명만이 자동차에서 타고 내리고 있었다.
한국인 및 동양인 직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공장 인근 주유소의 ‘레이첼’이라는 직원은 “4일 단속 이후로 교통량과 손님, 매출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공장이 위치한 서배나 지역의 경제적 타격은 공장에서 10여분 떨어진 풀러 시까지 미쳤다. 주민 이 모 씨는 “한인들이 즐겨 찾는 할인매장 코스트코에 라면 등 한국 물품이 가득 쌓였다. 급히 출국하는 한국인들이 환불하고 간 것”이라고 밝혔다.
풀러 시에서 이 모 씨가 운영하는 민박집에서는 단속 이후 한국인 5명이 짐을 싸서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씨는 “단속 당일부터 한국에서 엄청나게 전화가 많이 왔다. 본사 차원에서 명령받고 귀국한 사람도 있고, 비자 체류 기한이 남았는데도 무섭다고 귀국한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풀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 씨는 “(단속때 체포되지 않은) 주재원들 덕분에 아직은 괜찮지만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서배나 지역 교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단속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이 지역에서 교민신문 ‘서배나 타임즈’를 운영하는 이정환 국장은 “단속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오늘 어디에 이민 단속이 떴다’는 헛소문이 퍼지고 있어, 한국인, 현지인 모두 출근할 때 조심한다”며 “영주권자와 합법 체류 한인들도 외출을 꺼리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체포된 300여명은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서배나 지역 주재원과 교민 수천 명은 누구의 도움과 안내도 받지 못한 채 불안에 떨고 있다”며 “한국이나 미국 정부가 후속 조치를 통해 이들을 달래고 공포심을 없애야 현대 공장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자란 한인들도 미국 정부의 강압적 단속에 실망감을 표했다.
인근 리치먼드 힐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치과의사 수잔 안 씨는 “7살 때 이민 온 후 미국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믿고 자랐지만, 그 믿음이 깨졌다”며 “공장 지원을 약속한 미국 정치인들은 어디 갔나? 한국인들이 잇달아 체포되는 현실에 조지아주 정치인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안 씨는 “한국인들도 권리를 찾아야 한다. 같은 피해자인 남미계, 중국 이민자들과 함께 공장 조업 중단, 상가 철시 등의 항의도 고려해 봐야 한다. 그래야 미국 정치인들이 움직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