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일 미 연방 의회 연설에서 밝힌 국정 구상은 앞으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취임 후 43일 만인 이날 밤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의 황금기(Golden Age)’를 거듭 선언한 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아래 시행된 거의 모든 정책을 뒤집어 새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임 후 이날까지 경제, 이민, 외교 등 각종 분야에서 시행한 각종 정책을 “신속하고 단호하게”(swift and unrelenting) 진행했다”며 “우리는 43일 동안 대부분의 행정부가 4년 또는 8년 동안 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다”면서 이제 막 첫 단추를 낀 이러한 국정 기조를 꾸준히 이어갈 것임을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모멘텀이 다시 돌아왔음을 보고한다. 우리의 정신, 자부심, 자신감이 돌아왔으며, 아메리칸 드림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고 더 좋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재집권 첫 한달동안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다”고 자화자찬성 주장을 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약 100분에 걸친 연설에서 대선 유세를 방불케 하는 과장되고 과격한 언사를 거침없이 이어가는 동안 민주당 의원들의 비판과 냉소, 야유가 쏟아졌지만, 공화당 측은 기립 박수와 환호, 열광으로 맞서면서 양극단으로 분열된 미국 정치 및 사회의 단면도 확연히 드러났다.

◇ 대내 정책은 ‘바이든 뒤집기’…”상식 혁명의 극히 일부에 불과”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매일 내 행정부는 미국인이 필요로 하는 변화를 가져오고, 마땅히 누려야 할 미래를 끌어오려 싸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취임 후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모두 뒤집기 위해 시행한 100건이 넘는 행정명령 등 각종 행정조치를 일일이 소개했다.
구체적으로 연방 공무원 고용 및 해외 원조 동결, 그린 뉴딜 종식, 파리기후변화 협약 및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인권위원회 탈퇴, 환경 규제 및 전기차 의무화 폐지 등을 들었다.
또 미 공식 언어로 영어 지정하고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북미 최고봉 디날리산을 맥킨리산으로 개명한 것과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지 및 여성 스포츠에서의 성전환자 출전 금지 등도 열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더 이상 ‘워크'(woke·진보적 가치와 정체성을 강요하는 행위라는 비판적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가 없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상식 혁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결코 되돌릴 수 없고,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역시 바이든 전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처로 미국 영토 내의 에너지원 개발을 통한 에너지 비용 인하 방침을 거듭 밝혔다.
이 과정에서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개발 및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를 원하고 있다고 거론했으며, 이번 주 후반 희토류 등 전략 광물 생산 확대를 위한 조처를 예고하기도 했다.
인플레이션 억제의 또 다른 방안으로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를 소개했다.
특히 사실상 해체를 공언한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등의 낭비 사례를 소개했으며,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100세부터 360세 등 이미 사망한 이들이 여전히 등록돼 연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한동안 주장하면서 DOGE 및 머스크가 파격적으로 진행하는 연방 정부 축소 작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울러 관료주의에 대한 적대감도 여실히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변화에 저항하는 연방 관료는 즉시 해고될 것”이라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통치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지난해 대선 대표 공약의 하나인 감세에 대해선 “역사상 가장 경제적인 계획을 전달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의회에서 감세를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한 뒤 자신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민주당 의원들을 가리키며 “나는 그들을 믿는다. 그들은 분명히 찬성할 것”이라고 했다.

◇ 투자 유치 자랑하며 관세 옹호…파나마운하·그린란드 ‘야욕’도 드러내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 정책에서는 우선 관세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각종 우려는 자신이 관세 부과를 공언한 이후로 대규모 투자 유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으로 거세게 반박했다.
소프트뱅크, 오라클, 애플, TSMC 등 거대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지난 몇주 동안 1조7천억 달러”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연설에서 ‘관세’는 18차례나 거론,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에 두고 있는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 시절 제정된 반도체법에 대한 폐지 방침도 밝혔다.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지 않고도 관세를 두려워하는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는 “우리는 그들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투자하러) 올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후 안보보장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협상 테이블에 앉을 준비가 됐다”는 서한을 받았다면서 “야만적인 충돌을 끝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꾸준히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지칭해온 캐나다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를 언급하며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도 숨기지 않았다.
파나마 운하에 대해선 “미국의 피와 재화의 막대한 비용으로 건설됐다. 건설에 참여한 3만8천명의 (미국) 노동자가 말라리아 등으로 사망했다”며 “(지미) 카터 행정부가 1달러에 넘겨줬지만, 그 합의는 매우 심각하게 위반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중국에 넘겨주지 않았고 파나마에 넘겨줬다”면서 “이제 되찾을 것이고 이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책임지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그린란드 국민들을 향해 “여러분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강력히 지지하며, 여러분이 원한다면 미국에 오시는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국제 안보에 있어 정말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00분 가까운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의 재임 기간 미국이 ‘황금기’를 다시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는 과학의 광대한 영역을 정복하고, 인류를 우주로 이끌고, 화성에 성조기를 꽂을 것”이라며 “미국인 여러분, 놀라운 미래를 준비하라. 미국의 황금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동맹과의 협력보다 미국 우선주의에 기초한 일방주의에 무게를 둔 탓인지 연설문에 ‘동맹’은 등장하지 않았다. ‘우방과 적’이라는 표현을 한 차례 쓰기는 했지만 미국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맥락에서 사용됐다.
한편 이날 의회연설의 ‘지정 생존자'(designated survivor)는 더그 콜린스 국가보훈부 장관이었다.
지정생존자는 의회연설 등 중요한 행사 때 대통령과 장관 등이 한꺼번에 숨지는 재난 사태에 대비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기 위해 지정하는 인물로,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비공개 장소에 격리된다.
콜린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초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첫 탄핵 재판을 받을 때 변호인단에 합류했던 충성파 정치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