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발병을 피하게 만든 유전자 변이 9가지가 새로 발견됐다. 10일(현지시간) 《네이처 의학(Nature Medicine)》에 발표된 미국 연구진의 논문을 토대로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보도한 내용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워싱턴대(WUSTL) 연구진은 유전적 원인이 지배적인 알츠하이머병(DIAD)을 집중 연구하는 국제적 연구프로젝트 ‘유전성이 지배적인 알츠하이머병 네트워크(DIAN)’를 이끌고 있다. WUSTL의 호르헤 리브레-게리 교수(행동신경학)와 동료들은 그 일환으로 2011년부터 PSEN2라는 유전자 변이가 있는 가족 구성원을 추적 연구 중이다.
PSEN2가 있으면 뇌에 축적될 경우 신경퇴화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많이 만든다. 그로 인해 50세 전후의 이른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게 된다.
연구진은 그 가족구성원 중에서 61세에도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하지 않은 한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분명 PSEN2 변이를 갖고 있었다. 또 그에게 이를 물려준 어머니는 물론 어머니의 형제자매 13명 중 해당 변이를 보유한 11명 모두 50세 전후에 치매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7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예외적으로 인지능력이 멀쩡했다.
연구진은 그의 뇌를 스캔한 뒤 더 놀랐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처럼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다만 알츠하이머병 발병의 또 다른 인자로 지목되는 타우 단백질은 소량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검사 결과, 소량의 비정상적 타우만 발견됐으며 정상적 타우는 알츠하이머병에서는 일반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시각 인지와 관련된 후두엽에서만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후 10년 동안 기억력 검사 기타 인지평가를 실시해 이 남성이 실제로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저항력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전반적으로 그의 검사 점수는 정상 범주에 들었으며 수년 동안 일정하게 유지됐다. 심지어 일부 점수는 연습효과로 상승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유전학적 원인을 찾았다. 초기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내성을 보인 다른 두 사람에게서 발견된 보호 유전자가 있는지를 검사했다. 해당 남성에게선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유전적 원인이 지배적인 알츠하이머병에 내성을 보인 사람은 이들 3명뿐이다.
연구진은 PSEN2 변이가 있고 초기 치매가 발병한 친척들과 해당 남성의 유전자를 비교했다. 그 결과 친척들에겐 발견되지 않는 유전적 변이 9가지를 발견했다. 그중 6개는 종전까지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성은 없고 신경 염증 및 단백질 접힘과 같은 질병과 관련됐다고 여겨지던 것이었다.
해당 남성이 직계가족과 달리 최소 21년 이상 치매에 걸리지 않은 비결은 생활방식 및 환경적 요인과 함께 이러한 유전적 변이의 조합에 있을 것으로 리브레-게리 교수는 추정하고 있다. 이 남성은 또한 대부분의 알츠하이머병 환자들보다 뇌 염증이 덜 발생했다. 이는 그의 면역 체계가 아밀로이드 단백질 응괴(플라크)에 강력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논문을 검토한 하버드대 의대의 야켈 퀴로즈 교수(임상 신경심리학)는 이번 연구 결과가 아밀로이드가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기존 이론과 상충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점을 지적하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퀴로즈 교수 연구진은 리브레-게라 교수 연구진과 협력 아래 유전적 원인이 지배적인 알츠하이머병에 내성을 보인 세 사람 사이의 유사성을 연구하고 있다.
리브레-게라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타우가 뇌에 퍼지는 것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도 치매 발병을 지연시키거나 심지어 막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통해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가 곧 밝혀질 것이다. 아밀로이드를 공격하는 항체이자 202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레카네맙의 효과를, 타우를 공격하는 새로운 항체와 함께 병용해 시험 평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