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동맹국 정상에게 쓰는 용어로는 극히 이례적인 표현으로 비판적 인식을 숨기지 않는가 하면,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할 수 있는 안보협의을 잇달아 연기, 보류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 美국방 방한 보류…국무부 2인자 “심한 오판”, 이례적 비판 수위
한반도 정책을 총괄하는 미 국무부 2인자의 외교적 언사로는 굉장히 이례적이고 수위 높은 비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측은 또 일본 방문과 세트로 추진해온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을 보류하고,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도상연습(4∼5일 예정)을 개최 하루 전날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오스틴 장관의 방한과 한미 NCG회의 등은 동맹 강화와 한미일 3각 공조체제 본격 출범이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 성과와 연결되는 이벤트다.
내달 20일 트럼프 행정부 출범 때까지 한달 반 가량의 집권 기간을 남긴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실질적 협의뿐 아니라 ‘업적 관리’ 측면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일정일 수 있었으나 사실상 취소한 것은 한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또 외교 주무부처인 국무부의 베단트 파텔 부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계엄 관련) 이 전개를 둘러싼 결정과 관련해 답변이 이뤄져야 할 많은 질문이 있다”며 “계엄령의 발동과 그러한 조치가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확실히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4일 연합뉴스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지난밤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싶다”면서도 국회의 해제 요구 의결로 비상계엄이 상황이 해제된 상황을 염두에 둔 듯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으로부터 고무되고(encouraged) 있다”고 말했다.
“심한 오판” “매우 심각” “한국 민주주의 회복력 고무” 등 미 주요 인사들의 언급은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미 바이든 행정부의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미국의 당혹감·불쾌감? “TV보고 알았다”
미국의 이례적 기류에는 우선 위헌 논란이 불거진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 어긋난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창설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3차 회의를 지난 3월 개최한 국가다. 한국이 동맹국이지만 계엄령 발동은 ‘선’을 넘었다는 것이 바이든 행정부의 판단일 수 있는 것이다.
또 병력 동원이 결부되는 계엄 선포에 있어 동맹국인 미국에 발표 직전의 사전 통보도 없었다는 점에 대한 불만이 투영됐을 수도 있다.
실제로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TV를 보고 알았다”는 등의 표현으로 사전 통보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임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동맹국으로부터 사전에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다는 당혹감·불쾌감과 함께 돌발적인 계엄선포가 안보 측면에서 위험한 일이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4일자 사설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같은 한국 내 혼란 징후는 북한 독재자 김정은의 무모한 군사 행동을 불러올 수 있다”며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을 염두에 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윤 대통령에게 계엄령의 위험성과 관련한 일부 날카로운 조언을 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 “동맹은 특정 대통령 초월”…굳건한 한미동맹 재확인
그와 더불어 눈에 띄는 대목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상황에 대한 미국의 언급이 원론적이면서도 ‘뼈’가 있다는 점이다.
파텔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안에 대해서는 “탄핵 절차는 한국 내부의 절차”라며 “이 절차는 한국 헌법에 따라 다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동맹의 근본적 기둥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법치와 민주주의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며 “한국의 민주적 시스템과 민주적 절차가 승리할 것을 우리는 계속 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관계, 이 동맹, 우리가 한국과 맺고 있는 파트너십은 태평양 양쪽(한미) 특정 대통령이나 정부를 초월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의 연속성이 걸린 탄핵 문제와 관련해 한미동맹의 초당성을 굳이 강조한 것은 바꿔 말하면 탄핵안의 최종 결말과 관계없이 한미동맹은 굳건히 유지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었다.
물론 미국 정부는 계엄 국면 이후로도, 한미동맹과 한국에 대한 방어공약이 철통같다는 점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면서도 한미동맹에 대해서는 굳건함을 강조하고, 한편으로는 북한, 중국 등을 겨냥한 한미일 공조가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우려 섞인 시각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 NCG회의 무기 연기나 오스틴 국방장관의 방한 보류 등에서 보듯 한미공조에 단기적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없지 않다. 자칫 내년 1월 공식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에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계속 공개적 목소리 낼것”…안보에 악영향 우려한듯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4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후 질의응답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견고하고 회복력이 있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한국의 대화 상대방과 사적으로 소통하며 그것(한국 민주주의의 견고함과 회복력)이 계속되는 것의 중요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이를 훼손할 수 있는 상황 악화시 계속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우크라이나전쟁과 이스라엘이 치르고 있는 가자전쟁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2개의 대외 전선에 간접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발 정정 불안이 북한의 ‘오판’을 불러 한반도 안보상황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