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안네 프랑크’와 같은 삶을 산 돌리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참상을 상징하는 인물 안네 프랑크와 ‘닮은꼴’ 인생을 살았던 여성의 숨은 이야기가 추상 미술의 거장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 한 점에 의해 조명받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7일(현지시간) 1935년에 태어나 나치의 핍박으로 가족을 잃고 2년 6개월간 보모 집에 숨어 살았던 유대인 생존자 돌리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의 성은 공개되지 않았다.
돌리는 섬유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조부모, 그리고 그를 지극히 사랑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조부모는 100여 점의 예술 작품을 수집했고 그중에는 칸딘스키의 1910년작 ‘교회가 있는 무르나우 Ⅱ'(Murnau mit Kirche Ⅱ)도 포함돼 있었다.
해당 작품은 한때 독일 포츠담에 위치한 돌리의 조부모 집 식당에 걸려 있었다고 BBC는 전했다.
유복했던 가족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1935년 돌리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본격화했을 때부터였다.
돌리의 할머니는 앙리 팡탱 라투르 등 가족이 소유한 명작들을 외국으로 망명을 보장하겠다는 속임수에 당해 나치에 넘겼다.
결국 외국행은 실패했고 가족들은 한동안 숨어 지냈지만 1943년 돌리의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는 모두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곳에서 이들은 모두 사망했다.
돌리의 부모는 붙잡혀가기 직전 보모였던 아나에게 돌리를 맡겼고 7살이었던 돌리는 부모님이 끌려가는 것을 숨어 지켜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돌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아나의 집으로 가서 은신 생활을 시작했다. 아나는 돌리를 작은 방에 숨기면서 이제부터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고, 절대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누군가 집에 오면 아나는 돌리를 마룻장 밑 혹은 싱크대 아래 찬장에 숨겼다.
1945년 암스테르담이 해방을 맞을 때까지 돌리는 그렇게 30개월을 버텼다.
돌리는 이후 70대 후반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BBC는 그가 행복한 여생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돌리의 가족은 ‘교회가 있는 무르나우 Ⅱ’를 비롯해 전쟁통에 잃어버린 작품들을 되찾는 일을 숙제처럼 안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3년 돌리의 가족은 이 작품이 1951년부터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의 한 박물관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품 뒷면에서는 돌리 할아버지의 필체로 쓰인 ‘Landschaft'(풍경)이라는 단어도 발견됐다.
돌리의 가족은 오랜 노력 끝에 ‘교회가 있는 무르나우 II’ 소유권을 되찾았다.
이 작품은 다음 달 1일 런던 소더비 경매에 오른다. 칸딘스키 작품으로는 신기록인 3천500만파운드(약 533억원)에 그림이 낙찰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경매 수익금은 돌리 본가쪽 상속인 13명이 나눠 가질 예정이며 돌리 가족이 잃어버린 다른 작품들을 추적하는 데도 쓰일 계획이다.
칸딘스키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생생한 작품은 해방의 기쁨을 찾은 한 소녀의 이야기와 잘 연결된다고 BBC는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