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캐나다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오는 4월부터 수입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어려움을 겪는 배터리 업계가 향후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관세가 현실화하면 전기차 생산 비용이 증가하면서 차량 가격이 상승해 소비 심리 위축과 배터리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완성차 업체의 주요 생산 거점에 따라 관세 정책이 미칠 영향이 다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향후 북미 전략에 따라 K-배터리 3사의 희비도 엇갈릴 가능성이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4일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는 4월 2일께 수입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자동차 등의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도 예고된 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조달하려는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주요 고객사 확보와 생산 거점 확대에 집중해 온 K-배터리 3사도 후속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따져보는 중”이라며 “(관세 부과로) 전기차 캐즘이 더 이상 일시적인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갈 수 있어 배터리 업계에도 위기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기적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등에서 미국으로 들여오는 완성차에 관세가 부과돼 가격이 올라가면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며 자동차 교체 수요가 줄고 전기차 전환이 지연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보유한 배터리 업체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며 배터리 업계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향후 북미 시장 전략에 따라 업체 간 희비도 엇갈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미국 현지에서 단독 공장 2개와 제너럴모터스(GM), 혼다, 현대차와의 합작공장 5개 등 총 7개의 공장을 운영 또는 건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그간 GM, 포드, 테슬라 등과 협력하며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해 왔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탑재되는 포드의 머스탱 마하-E가 멕시코 쿠아우티틀란 공장에서 조립되고, GM의 쉐보레 이쿼녹스 EV와 블레이저 EV가 멕시코 라모스 아리즈페 조립 공장에서 제조되는 점은 향후 관세 부과시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부과로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맞다”며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 공장을 가장 많이 짓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앞서 지난달 24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정책과 규제의 변화가 생기면 단기적으로 수요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 기조가 갈수록 심화하는 분위기라 당사와 같이 선도적으로 북미 시장을 개척해 온 회사들은 선진입 효과가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K온과 삼성SDI의 경우 배터리가 탑재되는 주력 차종 대부분이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SK온은 포드 등 고객사의 주력 차량 모델이 미국에서 생산되는 데다 현재 미국 내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어 배터리 3사 중 관세 회피 효과가 가장 클 전망이다.
SK온의 배터리가 탑재되는 포드 F-150 라이트닝은 미시간주 디어본에 위치한 ‘로우그 일렉트릭 비히클 센터’에서 조립된다.
여기에 SK온 배터리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진 현대차의 아이오닉9은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이철민 현대차 국내마케팅실 상무는 지난 11일 열린 ‘아이오닉9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행사에서 “아이오닉9의 미국 판매 모델은 미국에서만 생산할 계획”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현재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이 없는 삼성SDI는 BMW와 리비안, 스텔란티스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있다.
삼성SDI의 배터리가 탑재되는 리비안 R1T는 일리노이주 노멀에 위치한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고, 지프 랭글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정책 변화로 완성차 업체들의 현지화 전략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미국 내에서 배터리를 직접 생산하고, 주력 차종도 미국에서 조립되는 기업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배터리 업체들이 미국 내 생산 시설에 집중하는 것은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필수적”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경우 미국 내 직접 생산 비중이 높아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더라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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