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적 관세정책 가시화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이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를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블룸버그통신 집계를 인용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오는 17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릴 가능성과 관련, 90% 확률이 시장 가격에 반영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 수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2일 상호관세를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70% 정도였다.
픽테 자산운용의 프레데리크 듀크로제트는 이번 달과 그다음 회의(6월)에서 0.25%포인트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정말 쉬운 결정이 됐다”면서 오히려 인하하지 않을 경우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경제 전망이 어두워져 ECB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폭을 키워야 할지가 문제라고 봤다.
아문디 자산운용의 마무드 프라드한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갑자기 성장이 중요 문제가 됐다”면서 “이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넘어섰다. 이는 유럽의 정책 완화를 가리킨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ECB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이달 금리 동결을 예상하는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근 급변했다고 FT는 설명했다. ECB는 지난달 5차례 연속 정책금리를 인하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20% 상호관세 부과가 EU에 4년간 7천500억 유로(약 1천209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콜로뉴 경제연구소 추산도 있다.
투자은행 바클리는 현재 2.5% 수준인 금리가 10월 1.25%까지 절반 수준으로 내리고 하반기에는 국채 매입 등에 나설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바클리는 유로존이 하반기에 침체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영국의 경우 5월을 포함해 올해 3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 잉글랜드은행(BOE)의 앤드루 베일리 총재는 지난달 미국 관세 여파와 관련, 인플레이션에 대한 직접적 영향은 모호하지만 영국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위험은 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주가지수가 급락한 가운데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2개월 안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확률을 기존 35%에서 45%로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불과 지난달 이 확률을 20%에서 35%로 올렸는데, 다시 한번 예측치를 수정한 것이다. 이는 JP모건 등이 미국의 침체 확률을 올린 데 이은 것이기도 하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구원투수’로 나설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전날 한때 금리선물 시장에서는 다음 달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과반(53.4%)을 기록했다. 이는 일주일 전(18.5%)이나 전 거래일(33.3%) 대비 급등한 것이었다.
다만 ‘연준 풋'(연준의 시장 개입)을 과도하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4일 “아직 정책 전환을 얘기하기엔 이르다”라고 밝힌 만큼 연준이 실제 여파를 확인할 때까지 몇 달간 관망세를 유지할 거란 관측이다.
FT는 파월 의장이 관세전쟁으로 경기 방어와 물가 통제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가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가 오지 않는다면 연준이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못 본 척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당분간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CME 페드워치에서도 다음 달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32.7% 수준으로 다시 내려간 상태다.
전날 장 초반만 해도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기간이 아닌 다음 주까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긴급 인하할 가능성과 관련, 금리 스와프 시장에서는 40% 확률을 가격에 반영했지만 이후 다시 내려갔다.
라이트슨ICAP의 로우 크랜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융 압박이 심화할 경우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보다는 해당 대상에 대한 직접적 조치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