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평결을 받고는 마치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정치 공세를 하는 데 유색인종 유권자 사이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온다고 CBS방송이 3일 보도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달 31일 ‘성추문 입막음 돈’ 의혹과 관련한 34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평결을 받자 재판을 ‘사기’이자 ‘조작’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에 불을 지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평결을 기회 삼아 흑인·히스패닉계 유권자들에게 다가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CBS는 진단했다.
검찰이 그간 수많은 흑인·라틴계 남성들을 붙잡아 넣으려고 한 것처럼 자신도 표적이 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흑인 등 유색인종 유권자들은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다고 CBS는 전했다.
35년 전 뉴욕을 발칵 뒤집었던 이른바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도 계기 중 하나다.
1989년 흑인·히스패닉계 소년 5명이 센트럴파크에서 조깅하던 한 백인 여성을 구타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유죄 판결을 받은 뒤 2002년 다른 사람이 범죄에 연루됐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누명을 벗은 사건이다.
당시 피해자가 범인 인상착의를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경찰이 센트럴파크 주변을 배회하던 피고인들을 범인으로 무리하게 몰아간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법 체계의 인종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당시 부동산 사업가이던 트럼프는 1989년 피고인들에 대한 사형을 촉구하는 신문 광고를 내는 등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무죄가 입증된 이후 피고인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CBS는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죄 평결을 받은 맨해튼 법원은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 피고인들이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장소였다.
뉴욕 인권 변호사인 마야 와일리는 뉴욕시의 흑인·히스패닉계 주민들은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을 기억한다며 “그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폭력적인 시스템의 희생자였던 피고인 5명에 대해 사형을 제안하는 광고를 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 진보프로젝트행동기금(APAF)의 주디스 브라운 디아니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색인종과 달리 “경찰에 의해 폭력적으로 체포되지도 않았고, 보석금을 낼 여유가 없어서 라이커스 교도소에 머무르는 일도 없었고, 변호사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었다”고 비판했다.
‘센트럴파크 파이브’ 사건에서 누명을 쓴 피고인 중 한명으로 지난해 뉴욕 시의원에 당선된 유세프 살람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트럼프가 나의 무죄가 입증됐을 때도 나를 사형에 처하길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죄 평결에 대해 기뻐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는 “이 (사법) 시스템이 작동했다는 점에 우리는 자랑스러워해야 하지만 우리 미국인이 34개 중범죄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은 전직 대통령을 가졌다는 점에 슬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평결 뒤 그에 대한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는 전했다.
에셜론 인사이트가 지난 달 30~31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흑인 유권자 중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이는 유죄 평결 전인 같은 달 13~12일 조사 때보다 11%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반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80%로 이전 조사보다 10%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