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개척’의 꿈을 놓고 20여년간 아웅다웅해온 ‘라이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회장이 16일 대형 우주선을 잇달아 발사하며 본격적인 경쟁의 서막을 올렸다.
그동안 스페이스X가 빠른 로켓 개발로 민간 우주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머스크가 훨씬 앞서 있었지만, 이날은 블루 오리진이 발사체 ‘뉴 글렌’의 첫 시험비행에 대부분 성공하고 스페이스X는 우주선 스타십 7차 시험비행에 완전히 실패해 베이조스만 웃었다.
몇 차례 연기된 끝에 이날 오전 2시 3분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처음으로 발사된 뉴 글렌은 2단 부분이 목표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뒤 예정된 시험비행을 무사히 끝냈다.
비록 대서양의 드론선에 착륙시켜 재활용할 계획이었던 1단 로켓은 회수하지 못했지만, 당초 이런 목표가 첫 시험비행에서 성공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예상된 점을 고려하면 궤도 비행에 단번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로 평가됐다.
베이조스는 이날 로켓 발사 후 블루 오리진 직원들이 펄쩍펄쩍 뛰고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려 기쁨을 표현했다.
또 “아주 큰 진심, 땀, 끈기. 블루 팀에게 큰 축하와 찬사를 보낸다”는 글을 올려 이날의 성공을 자축했다.
머스크 역시 이날 먼저 끝난 뉴 글렌의 첫 시험비행에 대해 “잘했다”고 칭찬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에 대한 답글로 베이조스는 “일론 머스크와 전체 스페이스X 팀의 행운을 빈다”고 썼고, 머스크는 다시 “대단히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후 스페이스X는 이날 오후 5시 37분(미 동부시간 기준) 달·화성 탐사를 목표로 개발 중인 대형 발사체 스타십의 7차 시험비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2단 우주선이 로켓 부스터에서 분리된 뒤 몇 분 지나지 않아 공중에서 분해되면서 당초 계획한 여러 기술 테스트를 거의 이행하지 못했다.
스페이스X는 작년 11월까지 6차에 걸친 시험비행에서 궤도비행을 완료하고 발사체를 대부분 회수하는 단계까지 갔으나, 이번에는 몇 가지 장비 업그레이드를 시도하면서 이전과 같은 성공적 비행을 이뤄내지 못했다.
머스크는 엑스에서 “기체의 엔진 방화벽 위의 구멍에서 산소·연료 누출이 있었다는 예비적 징후가 있다”고 실패 원인을 설명하면서도 “지금까지는 다음 (스타십) 발사가 내달 이후로 밀릴 것임을 시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간 우주기업 중 스페이스X에 필적할 만한 대형 발사체를 내놓은 기업은 블루 오리진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머스크가 느끼는 긴장감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은 높이 98m, 지름 7m의 2단 로켓으로, 스페이스X의 주력 로켓인 팰컨9보다 크다. 또 지구 상공 2천㎞ 이하 저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화물 중량도 약 45t으로 팰컨9의 2배에 달한다.
베이조스는 2000년 블루 오리진을 세웠고, 머스크는 2002년 스페이스X를 설립해 로켓·우주선 개발 기간도 블루 오리진이 더 길다.
그동안은 머스크가 속도전을 밀어붙이며 크게 앞서나갔지만, 블루 오리진이 그간 개발해온 로켓과 우주선이 근래 크게 진전되는 모습을 보여 앞으로의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블루오리진이 개발 중인 달 착륙선 ‘블루문’이 작은 크기와 효율적인 시스템 덕분에 스페이스X의 대형 스타십 우주선보다 달에 먼저 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20여년간 우주 사업에서 경쟁해온 머스크와 베이조스는 과거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계약 수주 문제 등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는 등 유명한 앙숙 관계였다.
머스크는 2016년 영국 BBC와 인터뷰에선 베이조스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가 누구냐”고 반문하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근래 두 사람 사이의 기류는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모습이다.
머스크는 이날 자신과 베이조스의 관계를 티격태격하는 의붓형제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 ‘스텝 브라더스'(Step Brothers; 의붓형제들) 속 한 장면에 빗대 밈(meme; 모방 콘텐츠)으로 표현하며 “스텝 브라더스가 베이조스와 나에게 완벽한 밈”이라고 했다.
해당 영화 장면에는 “우리가 방금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거야?”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CNN 방송은 “베이조스와 머스크는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며 두 사람이 전보다 가까워진 배경에 트럼프 당선인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최근에는 두 사람이 오는 20일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나란히 연단에 앉을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