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은 기자> photo:aj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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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의 정치가이자 사업가로 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허먼 케인이 30일 코로나 19로 별세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인 케인은 최근 코로나 19에 감염돼 애틀랜타 지역 한 병원서 인공호흡기 등의 치료를 받아오다 7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케인은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흑인들의 목소리’, 블랙 보이스 포 트럼프의 공동대표였습니다.
케인측은 이날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우리는 케인이 코로나 19로 처음 병원에 입원하던 날 이것이 매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밝혔습니다.
케인은 호흡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후 증상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6년 한 차례 암 진단을 받았던 병력 때문에 케인은 코로나 19 고위험군에 속했습니다.
케인은 지난 6월20일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에 참석했으며 당시 마스크를 전혀 착용하지 않은 모습으로 참석자들과 인증샷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6월 27일 케인측은 케인이 코로나 19 양성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지만 어디서 감염됐는지는 모른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케인은 확고한 애국자이자 보수당의 충실한 일꾼이었으며 아메리칸 드림을 살아낸 사려깊고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애도했습니다. 이어”그를 잃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을 포함해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케인은 테네시 멤피스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조지아에서 성장했으며 모어하우스 칼리지를 다녔습니다. 1980년대 ‘버거킹’에서 중직을 맡으며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으로 발돋음하기 시작한 케인은 이후 ‘필스베리’ 회장으로 전격 임명된데 이어 1986년부터 1996년까지 ‘갓파더스 피자’ CEO로 활약했습니다.
정치계로 입문하기 전 캔자스시티에서 페더럴 리저브 은행 지점장을 지낸 케인은 2004년 연방상원 경선에 나선 후 2012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로 도전장을 내민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희롱 의혹이 불거져 중도 사퇴했으며 지난해 4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 이사 후보로 추천했으나 자질논란 속에 낙마했습니다.
ARK 뉴스 이승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