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은 기자> photo:wsb-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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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민권운동의 거목인 존 루이스 연방하원의원이 17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
루이스 의원은 지난 해 12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 그간 투병 생활을 해왔습니다.
1950~60년대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을 이끈 루이스 의원은 20대 초반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민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흑인 인권 개선을 위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벌였습니다.
루이스 의원은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유명한 1963년 ‘워싱턴평화 대행진’을 이끌었던 6명 가운에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했습니다.
1940년 흑백 분리정책이 시행되던 미 남부 앨라배마주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 의원은 학생 시절 흑백 분리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미국 남부를 돌며 시위를 벌인 ‘프리덤 라이더‘(Freedom Rider)’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또 학생운동단체인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 회장을 맡아 남부 지역 흑인들의 유권자 등록을 도왔습니다.
1965년에는 앨라배마주에서 흑인 투표권을 주장하며 열린 평화 시위, 일명 ‘셀마 행진’을 이끌었으며, 시위 현장서 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모습이 TV로 중계되기도 했습니다.
루이스 의원은 1981년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의원으로서 정계에 입문했으며 1986년 조지아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34년 간 의정활동에 몸담았습니다.
2011년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받았습니다.
루이스 의원의 사망 소식에 지난 주말 미전역서는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루이스 의원의 삶은 여러 방면에서 특별했다”며 애도를 표했으며,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성명을 내고 루이스 의원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루이스 의원 생전 거친 논쟁을 주고 받으며 관계가 좋지 못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18일 하루 동안 백악관을 비롯한 전국 연방 건물에 조기 게양을 명령하며 그의 오랜 기간 공직자로서의 섬김에 대해 존중을 표했습니다. 케이샤 바텀스 애틀랜타 시장도 이날 시내 모든 공공 건물 등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습니다. 반면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조지아를 대표하는 인물이 사망했음에도 이같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애틀랜타 시민들의 추모 행렬도 주말 내내 이어졌습니다.
다운타운 어번 애비뉴 선상 루이스 의원 얼굴이 그려진 대형 벽화 아래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카드, 양초 등이 가득했습니다.
18일 오전 다운타운에 소재한 대형 교회 3곳서는 루이스 의원을 비롯해 같은 날 사망한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 C.T 비비안 목사(95)를 기리기 위해 95차례 교회 종을 울렸습니다.
ARK 뉴스 이승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