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소속 주정부들 낙태 금지 경고에 약국체인 “일부 지역 판매 않겠다”
진보 진영 “강제 출산 극단주의자들에 굴복” 월그린스 보이콧 움직임
미국에서 지난해 연방대법원 판결로 낙태권이 폐기된 이후 보수, 진보 진영 간 이념 갈등이 커진 가운데 이번에는 임신중절약(사후피임약) 판매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됐다.
특히 미국의 대형 소매약국 체인인 월그린스가 최근 공화당 소속 주(州)검찰총장(주법무장관 겸임)들의 낙태 금지 경고를 받아들여 해당 지역에서 이 약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하는 진보 진영의 집중 포화 대상이 됐다.
월그린스가 낙태권 공방의 중심에 선 것은 지난 3일 사후피임약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미페프리스톤’을 일부 지역에서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다.
월그린스의 이 같은 방침은 지난달 초 공화당 소속인 20개주 검찰총장들이 이 회사와 CVS헬스에 공동 서한을 보내 임신중절약을 해당 지역에서 판매할 경우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따른 것이다.
공화당을 비롯해 미국의 보수 진영은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며, 일부는 사후피임약 복용을 포함해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해 월그린스가 일부 지역에서 미페프리스톤을 판매하지 않기로 한 방침이 3일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진보 진영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잇따라 나왔다.
민주당의 대권 잠룡 중 한 명으로 언급되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6일 트위터에 관련 기사를 링크해 올리면서 “캘리포니아는 월그린스 또는 극단주의자들에게 굴복하고 여성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회사와는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볼링 포 콜럼바인’, ‘식코’ 등 진보적인 색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발표해온 마이클 무어 감독도 이날 자신의 웹사이트에 월그린스를 보이콧하자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무어 감독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약국 체인인 월그린스가 극단주의적인 낙태반대/강제출산 운동의 위협에 굴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미페프리스톤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여성을 2등 시민의 지위로 공고히 하려는 결정에 우리 모두가 강력히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침묵하는 매일이 이런 편견과 여성혐오를 가능하게 하는 또다른 날들이 될 것”이라며 “전국적인 월그린스 보이콧 운동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월그린스는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모든 구역에서 미페프리스톤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다만 앞서 논란이 된 20개 주에서 판매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올해 초 FDA는 먹는 임신중절약의 주요 성분 가운데 하나인 미페프리스톤 관련 규제를 완화해 동네 약국이나 CVS·월그린스 등 소매약국 체인에서 이 약을 조제할 수 있게 했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중절약을 구성하는 두 가지 약물 가운데 하나로,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 작용을 차단해 유산을 유도하며 임신 10주까지 사용하게 돼 있다.
또 다른 약물인 미소프로스톨은 위궤양 등 다른 질환의 치료제로도 쓰여 이미 약국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미페프리스톤의 경우 FDA가 2000년부터 사용을 승인해 병원과 일부 통신판매 약국 등에서 처방전을 받아 판매할 수 있게 해오다 이번에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던 판례인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연방대법원이 폐기한 뒤 먹는 임신중절약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지면서 주마다 각기 다른 정책을 따라야 하는 약국 체인의 미페프리스톤 판매 여부는 한층 불투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