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학대한 엄마를 살해한 집시 로즈 블랜처드가 2018년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어린 시절부터 10여년간 불치병 환자로 행세하도록 강요하는 등 자신을 학대한 엄마를 남자친구와 모의해 살해한 미국 여성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 언론은 특별한 사연의 주인공인 집시 로즈 블랜처드(32)가 지난주 교도소에서 출소한다는 소식부터 시작해 출소 후 그의 행보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USA투데이는 3일 “집시 로즈가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이제 그는 어디에나 있다”는 제목으로 온라인상에서 계속 화제가 되고 있는 그의 이야기와 대중이 이토록 높은 관심을 보이는 배경을 자세히 분석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같은 날 “교도소에서 영웅으로: 집시 로즈가 ‘자유’의 첫날을 맞고 있다”는 제목으로 미국 대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조명했다.
일간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집시 로즈 블랜처드의 모친인 디디 블랜처드는 2015년 6월 미주리주 자택에서 살해돼 숨졌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집시 로즈는 휠체어를 사용하고 정신 능력이 다소 저하된 상태로 보였는데,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그가 실제로는 걸을 수 있으며 의학적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관들은 집시 로즈의 남자친구인 니컬러스 고드존이 디디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했고, 두 사람이 함께 디디의 살인을 계획했다는 증거도 찾아냈다.
2급 살해 혐의로 기소된 집시 로즈는 이듬해 자신의 죄를 자백했고, 어머니가 자신을 학대했다고 폭로한 뒤 검찰과의 양형 합의에 따라 최소 형량인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집시 로즈의 변호사인 마이크 스탠필드는 2016년 기자회견에서 지난 15년간의 의료 기록을 검토하고 이웃과 친구들을 탐문한 결과, 집시의 어머니가 집시를 오랫동안 감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스탠필드는 “집시의 어머니는 집시에게 필요하지 않은 약을 먹이고, 필요하지 않은 시술을 받게 하는 등 신체적·의학적으로 학대했다”며 “어머니가 먹인 약 때문에 집시는 대부분의 치아를 잃은 상태”라고 말했다.
디디는 의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딸이 백혈병과 근육위축증을 앓고 있다고 속이면서 금전적 후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 사건은 언론의 큰 관심을 끌었고, 부모나 보호자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이의 질병을 과장하거나 꾸며내는 심리적 장애를 일컫는 ‘대리 뮌하우젠 증후군’ 사례로 다뤄졌다. 다만 디디 블랜처드가 사망하기 전까지 이 장애를 공식적으로 진단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이야기는 이후 8부작 드라마 ‘디 액트'(The Act)로 만들어져 2019년 미 훌루 채널에서 방영됐고, 한국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를 통해 공개됐다. 또 HBO 다큐멘터리(‘Mommy Dead and Dearest’)로도 제작돼 2017년 방영됐다.
교도소에서 7년여간 복역한 집시 로즈는 지난달 28일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함께 범행한 당시 남자친구 고드존은 1급 살인 혐의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집시 로즈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출소 전부터 만들어졌는데, 그가 출소한 뒤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인스타그램과 틱톡 팔로워가 각각 620만여명, 640만여명으로 불었다.
그는 수감 중 만나 결혼한 남편과 지내며 소소한 일상을 찍은 사진 등을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출소 후 지지자들에게 안부를 전한 영상 등 틱톡 게시물은 총 1천680만회의 ‘좋아요’를 받았다.
USA투데이는 그의 팬덤에 대해 “팬들은 그를 동정하고, 그를 보호하고 싶어 한다. 그의 사회 복귀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버펄로대 영문학과 부교수인 데이비드 슈미드는 이런 현상에 대해 “범죄 실화와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열정이 완벽하게 융합된 것”이라며 “이야기의 특성이 결합하면서 수백만 개의 밈이 생성됐고, 대중의 눈에 오랫동안 남을 만한 경력을 쌓을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미디어 심리학자 파멀라 러틀디지는 “실제 범죄 사건은 위험에 대한 생리 반응을 자동적으로 활성화해 우리의 주의력을 높인다”며 “우리의 뇌는 생존 본능으로써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의문점이 많은 사건에 관심이 증폭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버밍엄시립대의 사회학 강사 카디언 포우는 “집시가 ‘인플루언서’의 문화 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인터넷에서 명성을 얻을수록 자신이 그녀를 돕고 있다고 느낀다”며 “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유명인을 만들거나 그들을 끌어내릴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를 이용한 상업화 움직임이 우려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TV 네트워크 라이프타임은 그가 교도소에서 출소를 준비하면서 찍은 인터뷰를 담은 6시간짜리 방송 프로그램을 오는 5일 방영한다. 또 작가들이 그의 구술을 바탕으로 쓴 회고록 책도 곧 출간될 예정이다.
미디어 학자인 멜빈 윌리엄스는 “수감됐던 인물이 유명 인사로 활동하며 범죄 미디어 장르에서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한다”며 “집시는 이미 여러 소셜미디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런 트렌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