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29일 100세에 별세
죽의 장막 열고 미중관계 구축, 미소 데탕트로 탈 냉전 주도
미국은 물론 세계 외교의 거목, 역사의 거인으로 불려온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100세로 타계해 역사의 한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미 사상 유일하게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은 겸직한 외교 거목으로 꼽히면서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열어 오늘날 미중관계를 구축했으며 소련의 붕괴로 이어진 미소 데탕트를 시동했고 각지역의 전쟁과 분쟁을 끝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세기 50년동안 미국은 물론 지구촌 외교안보를 설계하고 실행해온 외교 거목, 역사의 거인인 헨리 키신저 박사가 29일 커네티컷 자택에서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닉슨 행정부에서 유일하게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직하며 외교거목으로 등장해 포드 행정부에서도 국무장관을 맡아 모두 8년간 미국외교, 나아가 세계외교를 주도했다.
키신저 박사는 외교수장에서 물러난 후에도 미국외교에 존중받는 강력한 어드바이스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올 7월 100세가 된후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회담하는 역사적 거인의 위상을 보여줬다.
키신저 박사는 무엇보다 70년대 초 극비 방문과 핑퐁 외교 등을 통해 죽의 장막을 여는데 성공해 1979년 미중수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중과 마오저뚱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현재의 두 슈퍼파워 관계를 구축하는데 핵심 설계자와 실행자 역할을 했다.
미국과 중국이 오늘날 위태위태한 갈등을 겪고 있으나 키신저의 외교가 반세기 50년동안이나 정면 충돌, 전쟁 만큼은 피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 전까지 냉전을 주도해온 맞상대 옛소련과는 이른바 데탕트에 시동을 걸어 핵탄두를 포함한 군축협상을 시작하고 결국 91년 옛 소련의 붕괴와 냉전 종식을 가져왔다.
키신저 박사는 은퇴후인 1999년에는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만난 바 있다.
그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강대국들의 세력균형으로 접근하며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소련이 남한을 승인하고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는 ‘교차 승인‘ 방식을 통해 남북 분단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미국과 세계 외교를 설계하고 실행하면서 이념 대결과 전쟁 보다는 현실주의 외교와 정치를 추구해 데탕트로 지구촌을 안정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키신저 박사는 데탕트, 셔틀 외교, 전략적 인내 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결과를 이끌어내 미국외교의 교과서로 추앙 받고 있다.
이집트와 시리아의 이스라엘 협공으로 발생했던 73년의 4차 중동전쟁을 휴전시키는 해결사 역할도 했고 같은해 미국과 남·북 베트남 사이 종전을 선언하는 파리평화협정을 도출했다는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가 2년후 베트남의 패망으로 수상반납 등 논란을 겪었다.
그러나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미군의 비밀 폭격으로 수천명을 살상한 작전을 승인해 전쟁범죄자로 비난 받기도 했고 반공을 위해선 각국의 군사 쿠테타까지 지지한 오점을 남겼다.
헨리 키신저 박사는 1923년 독일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나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1938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으며 하바드 대학을 졸업한 후 박사학위를 받고 정치학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친 학자로도 기억되고 있다.
워싱턴 애틀랜타 라디오 코리아 한면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