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흑 단체 손 맞잡고 기념행사…”우정과 희망으로 먼저 손 내밀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아시안 증오 멈춰라” 함께 외쳐
로드니 킹 딸 “증오범죄 극복해야…통합은 아버지의 유산”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발생 30주년인 29일(현지시간) 한인과 흑인들이 한목소리로 화합을 다짐했다.
LA 한인회 등 한인 단체들은 이날 오후 코리아타운 리버티 파크 잔디 광장에서 흑인 단체들과 함께 ‘LA 폭동, 사이구(SAIGU·4·29) 평화 기원 행사’를 개최했다.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LA 폭동은 교통 단속에 걸린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분노한 흑인들이 LA 도심으로 일제히 쏟아져 나와 폭력과 약탈, 방화를 저지른 사건이다.
흑인들의 분노는 한인 슈퍼마켓에서 흑인 소녀가 총격으로 사망한 이른바 ‘두순자 사건’과 맞물리면서 한인에게로 분출됐고, 당시 LA 도심에 있던 한인 타운은 잿더미가 됐다.
이날 기념식은 30년 전 폭동의 상처와 교훈을 되새기며 한인과 흑인 간 연대를 강조하는 인종 화합의 행사로 치러졌다.
한인회, 한인타운청소년회관, 한미연합회(KAC), 아시안아메리칸정의진흥연대 LA 지부와 흑인 사회 구심점인 퍼스트 AME 교회, 비영리 흑인단체 LA 어번리그가 이번 행사를 위해 손을 맞잡았다.
퍼스트 AME 교회 J. 에드거 보이드 목사는 “한인, 흑인, 백인, 라틴계 모두 여기에 함께 모였다”며 “우리는 공포와 갈등, 파괴 너머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번영과 발전, 희망을 위해 함께 모였다”며 “우리는 공통의 유대감과 새로운 우정, 새로운 희망을 찾고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안 한인회장은 “30년 전 폭동 당시 충격과 엄청난 피해 때문에 오늘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LA 폭동은 한흑 간 문제가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이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웃 커뮤니티와 함께 더불어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한인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먼저 손 내미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은 이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아시안 증오를 멈춰라'(Stop Asian Hate)도 함께 외쳤다.
기념식과 더불어 한인 등 아시아계와 흑인 뮤지션, 아티스트들이 동참해 치유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연을 선보였고, 한인과 흑인, 백인, 라틴계 모두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어우러졌다.
행사를 마친 뒤에는 다 함께 인종 화합을 기원하는 도심 행진에 나섰다.
주 LA 총영사관과 문화원도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총영사관은 한국기업협회(KIT)와 함께 우리 기업이 만든 물품을 LA 현지 사회에 무료로 증정했고, 문화원은 이날 저녁 ‘플래시포인트 4·29’ 콘서트를 개최했다.
문화원 콘서트에는 록밴드 스틸하트의 히트곡 ‘쉬즈 곤'(She’s Gone)을 부른 보컬 밀젠코 마티예비치 등이 무대에 올랐다.
피아니스트 조 로톤디는 소리꾼 서연운 선생과 함께 판소리 협업 공연을 펼쳤다.
특히 로드니 킹의 딸 로라 킹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 “아시안 커뮤니티가 인종차별과 증오범죄로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 사이의 간극을 이어줄 방법을 찾고 증오범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로라 킹은 LA 현지 인권 단체들과 함께 화합을 촉구하는 행사에도 참석했다.
그는 “아버지는 결코 증오나 폭력을 옹호하지 않았다”며 “30년 전 도시가 불타자 아버지는 ‘우리 모두 함께 잘 지낼 수 없느냐'(Can we all get along)며 평화를 간청했다. 통합은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