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에 방치되고 폭도로 몰렸던 한인들…이젠 우선보호대상으로 위상 변화
한·흑, 상처 딛고 손잡아…’흑인 목숨 소중’. 아시안 혐오범죄 대응 연대
편집자 주 = 오는 29일(현지시간)은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이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날입니다. 현지 한인들에게 고통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한인과 흑인 사회는 그날의 상처를 딛고 손을 맞잡고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LA 폭동 30년을 맞아 이 사건이 한인 사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인 사회의 도전 과제와 각오를 짚어보는 다섯 꼭지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1992년 4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백인 경찰관 4명이 무죄 평결을 받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폭력과 방화, 약탈, 살인을 자행했다.
이 폭동으로 무려 55명이 사망했고 2천300여 명이 다쳤다. 피해액은 총 7억2천만 달러(9천100억 원)에 달했다.
당시 흑백차별에 항의하는 흑인들의 성난 파도는 한인 타운까지 덮쳤다. 한인 슈퍼마켓에서 흑인 소녀가 총격으로 사망한 이른바 ‘두순자 사건’과 맞물리면서 흑인들의 무차별적 분노가 한인에게 분출된 것이다.
흑인 거주지 사우스 센트럴 지역을 포함해 LA에서 피해를 본 업소가 1만여 개였고 이 중 2천800여 곳이 한인업소였다. 한인 이재성(당시 18세) 씨도 흑인들의 총격에 희생됐다.
30년 전 LA 경찰은 백인 동네를 보호하기 위해 흑인들의 한인타운 약탈을 방치했다. 주류 언론은 가게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한인들을 폭도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인 인종 차별이 폭동의 원인이었으나 주류 사회는 이를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으로 덮으려 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LA 한인타운은 그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했다.
윌셔 길과 올림픽 대로에 자리 잡은 한인 식당에선 그룹 방탄소년단(BTS) 노래가 울려 퍼지고, 가게 벽에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작년 11월 BTS의 LA 콘서트 때 멤버들이 다녀갔다는 한인타운의 한 곱창집은 이른바 ‘성지순례’를 하는 팬들도 북적였다. 당시 한인타운은 BTS 특수를 톡톡히 누렸고 미국 언론에서도 화제가 됐다.
한인타운에서 코리안 BBQ 식당을 운영하는 배모 씨는 27일(현지시간) “수십 년 전에는 한인들끼리 잘 살면 된다는 풍조가 있었고, 언어 문제 등으로 타인종 손님을 받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말이면 한인타운 음식점에는 한인들보다 백인, 흑인, 라틴계 손님이 더 많을 정도”라며 “한국 영화와 드라마, 한식이 인기를 끌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일부러 이곳을 찾는 고객도 있다”고 전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세월 동안 한인들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LA 당국의 의도적인 무관심 속에 속수무책으로 성난 폭도들에 당해야만 했던 폭동의 아픈 과거는 옛일이 됐다.
2020년 11월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선 앤디 김(민주·뉴저지), 매릴린 스트리클런드(민주·워싱턴), 미셸 박 스틸(공화·캘리포니아), 영 김(공화·캘리포니아) 등 한국계 의원 4명이 탄생했다. 미주 한인사회 역사상 한국계 여성 연방의원을 배출한 것은 처음이었고, 4명의 연방의원이 한꺼번에 탄생한 것도 최초였다.
미국 정계에 ‘코리안 아메리칸 파워’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더욱이 이제 미국내 한인들은 더이상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돼 있지 않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주도세력 형성의 가교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한인, 흑인 사회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항의 시위와 아시안 증오 범죄를 고리로 인종차별 문제에 함께 연대하는 관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주목할 대목이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이어진 BLM 운동은 한인 사회의 달라진 위상과 인종 갈등에 대처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의 무릎에 목을 짓눌려 숨지자 분노한 흑인들은 미국 전역의 거리를 점령했다.
시위 초기 흑인들이 플로이드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를 중심으로 상점을 약탈하고 불을 지르는 일이 벌어지자 LA 폭동을 겪은 한인 사회도 불안에 떨었다. 경찰이 사실상 한인타운을 버렸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서다.
하지만, 시위 발생 7일째 되던 날 한인타운에는 치안 유지를 위해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이 전격 배치됐다. 시위 사태에 대응해 주 방위군이 처음으로 투입된 지역 중 한 곳으로 한인타운이 선정된 것이다.
이후 한인 사회는 젊은 2세, 3세를 주축으로 BLM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LA와 뉴욕 등 대도시에서 흑인 인권단체와 손을 잡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를 외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한인과 흑인간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미국 전역의 한인 단체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흑인 지역사회에 한국산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기증했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제공하는 코로나 구호기금 신청 업무를 도왔던 LA 한인회에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 흑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제임스 안 한인회 회장은 “흑인들을 도우면서 보람이 있었고 한흑 커뮤니티 간 화합도 느꼈다”며 “한인과 흑인은 피부 색깔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한인, 흑인 사회는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에서도 인종 화합으로 연대했다.
지난해 3월 한인 여성 4명이 희생된 애틀랜타 총격 참사 당시 추모 촛불 집회에는 흑인과 백인이 모두 동참해 화합을 다짐했다.
이어 지난 2월 뉴욕에서 30대 한인 여성이 노숙자의 손에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자 흑인과 유대인 단체 지도자들이 증오범죄 근절을 외쳤고, 미국의 대표적인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뉴욕 한인회를 찾아 인종 화합을 역설했다.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UC 리버사이드)의 장태한 소수인종학 교수는 “LA 폭동은 미주 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정치력 신장에 나서는 전환점이었다”며 “한인들이 단일민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인종 다문화 미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깨달은 사건”이라고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