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군이 지구대를 찾아오기 이틀 전인 지난해 같은 달 18일 오후 9시께 아르바이트를 마친 A군은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다가 모 아파트 단지 자전거 보관대에 잠금 장치 없이 세워져 있던 자전거 한 대를 타고 갔다.
몇 시간 뒤 자전거 주인은 “누군가 내 자전거를 훔쳐 갔다”고 112에 신고했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A군이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준 뒤 스스로 지구대를 찾아 와 자기 잘못을 털어놓은 것이다.
A군은 “평소 친구가 타던 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겨 친구의 자전거로 착각했다”며 “잠시 빌려 타려고 한 것인데, 뒤늦게 다른 사람의 자전거라는 사실을 알고 돌려줬다”고 진술했다.
그는 “일을 끝내고 귀가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빨리 여섯 동생의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에 서두르느라”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후 사건 서류는 상급 기관인 오산경찰서 여성청소년과로 이관됐는데, 담당 경찰관은 절도 사건 자체보다 A군의 진술에 나온 가정 형편에 주목했다.
해당 가정은 6남 1녀의 다자녀 가정으로, A군은 이 중 장남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A군은 생계를 위해 집 근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A군의 부친은 물류센터에서 근무하고, 모친은 심부전과 폐 질환 등으로 투병 중이어서 평소 중학생·초등학생·유치원생·생후 7개월 된 젖먹이 등 총 6명의 동생은 사실상 A군이 돌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7남매에 부모까지 합쳐 이들 9명의 가족이 사는 곳은 14평짜리 국민임대아파트로, 주거 환경도 비교적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A군 부친의 월 소득이 있고, 차량도 보유한 상태여서 기초생활수급이나 차상위 등 취약계층 선정 대상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정 기준 이상의 차량을 보유했을 경우 차상위계층 선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차량 보유와 관련, A군의 부친은 “다자녀인 데다가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많아 차량이 꼭 필요해서 보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군의 가정이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고 판단,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고 여러 차례 가정 방문을 하며 구체적인 가정 형편을 조사했다.
이어 주민센터와 보건소 등 관계자들과 합동으로 A군의 보호자를 면담하고,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심리상담도 했다.
그 결과 오산시, 오산경찰서, 주민센터, 청소년센터, 보건소, 복지기관 등 7개 기관은 지난 6일 통합 회의를 열어 A군 가정에 실질적인 복지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생활지원으로는 긴급복지지원(320만원×3개월), 가정후원물품(이불, 라면 등), 급식비(30만원), 주거환경개선(주거지 소독), 자녀 의료비(30만원)·안경구입비(10만원) 등을 지원했다.
또 교육지원으로는 초·중등 자녀(3명) 방과후 돌봄 제공, 중학생 자녀 대상 운동프로그램 제공 및 진로 상담을 했고, 주거지원으로는 기존 주택 매입임대제도(최대 8년 임대)를 지원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군이 경찰에 고맙다는 뜻과 함께 앞으로 중장비 관련 기술을 배워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동생들을 보살피겠다는 말을 전해왔다”며 “경찰은 향후 7남매가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위기청소년 발굴 사례는, 자전거 절도 사건에서 범인 검거 및 피해품 회수에만 그치지 않고, 범죄소년이 처한 가정 환경 등을 면밀히 살펴 복지 사각지대를 찾은 사례”라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A군의 자전거 절도 사건과 관련, 지난달 11일 선도심사위원회를 개최했다.
선도심사위는 소년이 저지른 범죄 중 사안이 경미하고 초범인 경우,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 등에 한해 사건 내용과 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훈방·즉결심판·입건 등의 처분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선도심사위는 A군에게 즉결심판 처분을 내렸다.
최근 법원은 A군에게 벌금 1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대해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사실상 없던 일로 해주는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