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첫소리와 가운뎃소리, 끝소리를 합해 음절을 이루죠. 음절 즉, 다발 하나가 작은 우주이기도 합니다.”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 대학 명예교수는 한글날인 9일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린 시민 강좌에서 “한글은 우주론 원리를 따르는 체계적인 문자”라며 이같이 밝혔다.
후베 교수는 50년 한국어 공부 외길을 걸어온 학자다.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군대 위생병으로 활동하며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그는 한국학, 중국학, 동아시아 지리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쳐 왔다.
후베 교수는 “세종대왕(재위 1418∼1450)께서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다면 한글날도, 한글문화도 없었다. 우리 모두 큰 박수를 보내드리자”고 제안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한글이 가진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후베 교수는 1443년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해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점에서 과학적인 문자지만, 그보다 훨씬 더 좋은 특징을 많이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정보기술 측면에서 한글은 복잡해졌고 우수한 점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종이 처음 문자를 창제했을 당시 정한 자음과 모음 개수는 28개였으나, 오늘날에는 일부를 제외한 24개만 쓰고 있고 그 순서가 다른 점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후베 교수는 한글 창제 당시의 원리를 고려한 컴퓨터 자판 도입, 28개 자음과 모음 사용 등을 제안하며 “‘훈민정음’에 따라 가능한 음절 다발 수는 약 400억개”라고 강조했다.
후베 교수는 한글에 담긴 음양오행 원리 등을 ‘우주론적인 이진법’이라고 언급하며 “세종대왕은 완벽하게 디지털화된, 온 우주가 담겨 있는 문자를 최초로 창조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가 0과 1로 된 이진법으로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린다면, 그보다 250년 앞선 세종대왕은 컴퓨터의 큰아버지”라고 힘줘 말했다.
후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문자와 문화가 가진 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어제 오늘 세계 뉴스를 보면서 한 민족의 언어, 즉 말과 글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하고 자기 글만 쓰라고 한다면 (다른 나라의) 문화, 사람, 그리고 민족의 혼을 뺏는 일”이라며 문자의 의미를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