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특집] 김대중-김영삼 대화… “거시기 말이여, 자네는 너무 쉽게 생각한당께”

1986년 7월 김대중 김영삼 조찬간담회

“니는 말이다. 쉬운 걸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노”

[삶] 인터뷰이들 역대대통령 평가

편집자 주= 이번 특집기사는 2022년 9월 삶 인터뷰가 시작된 이후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만 발췌해 묶었습니다.

“몇 차례 김대중과 단둘이 심층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아는 것이 많고, 자기가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스타일이다. 그게 김영삼과 다른 면이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둘이 마주 앉았다. 김영삼이 ‘니는 말이다, 쉬운 걸 왜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노?’라고 했다. 그러자 김대중은 ‘거시기 말이여, 자네는 너무 쉽게 생각한당께’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영삼은 사람을 아들이나 조카 대하듯이 하니 사람을 끌었다. 밥을 먹으면서 상대방의 심기를 살필 줄 알았다.”

위의 내용은 박찬종 변호사가 [삶] 인터뷰에서 전해준 에피소드다.

연합뉴스는 지난 2022년 9월부터 진행한 [삶] 인터뷰에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뷰이들의 답변은 일치하지 않았다. 모든 역대 대통령은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는데, 인터뷰이에 따라 장점을 크게 보기도 하고, 단점을 중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박정희와 김대중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들 대통령은 각각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공로가 크다고 했다.

김영삼에 대해서는 금융실명제 실시 등 공적이 적지 않지만, 경제를 잘 몰라서 한국을 외환위기에 빠트렸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5년 단임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고, 재임 당시 추진했던 정책의 결과는 퇴임 후에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향후 대통령들은 경제력과 군사력(안보)에서 강한 한국,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공정하고 민주적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연하지만, 후세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란코프 교수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란코프 교수

[윤근영 기자 촬영]

◇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 란코프 교수는 1980년대 소련 당시의 레닌그라드대학교(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의 중국역사학과에서 공부했던 ‘소련 386 운동권’ 출신이다. 1984년∼1985년 10개월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뛰어난 한반도 전문가로 국제사회에 알려진 그는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북한학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 외국의 학자로서 한국의 역대 정치인 중 한국의 발전에 가장 기여를 많이 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 단연 박정희다. 이걸 의심한다면 객관적으로 역사의 진실을 판단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다. 아니면 편파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중립적 역사학자라면 박정희를 꼽을 수밖에 없다.

— 박정희는 만주국 육군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에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고, 남한 군인 시절에는 남로당에 가입하고는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 남로당 군인들의 명단을 정보당국에 통째로 넘겼고, 집권 이후에는 독재와 인권탄압을 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그런 사실은 나도 잘 안다. 그의 행보에는 이기주의와 출세주의가 없지 않았다. 그는 독재자였고, 노동운동을 탄압했다. 정치적 자유도 막았다. 그렇지만 그의 성과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한국과 같은 경제 기적이 세계 역사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다. 결과적으로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나라의 평균수명은 지도자를 평가하는 종합적인 지표인데, 한국은 1960년 52세에서 1980년 65세로 올라갔다. 13세나 점프한 것이다. 박정희가 이뤄낸 경제성과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줬다. 중국과 베트남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는데, 그들이 모델로 삼은 것은 박정희 방식의 개발독재다.

이미지 확대육영수 여사와 산업단지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와 산업단지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 박정희 다음으로 대한민국에 기여한 사람은 누구인가,

▲ 김대중이라고 본다. 그는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물론 민주화의 토대는 튼튼한 경제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는 경제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것은 맞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김대중은 젊은 시절이었던 1960년대부터 오랫동안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던 사람이다. 한국 민주화에는 김대중의 기여가 크다고 본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살아있을 때 서로 대립했지만, 역사의 눈으로 보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국민들이 잘사는 민족국가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이 이들 두사람의 목표였다.

—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모순이 심한 사람이다. 그는 심한 부정부패에 눈을 감았고, 권위주의 독재정치를 하고도 경제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경제 성장을 경시했던 사람이다. 개인숭배도 있었고, 비합리주의적 외교도 있었다.

— 이승만이 없었다면 남한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북한 방식으로 출발했을 것이고, 박정희의 경제성장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데.

▲ 한반도 남쪽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사람은 이승만이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분단을 결정했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는 그 분단의 불가피한 결과물이었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다른 사람이 남한의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삶] “한국기여 1위 단연 박정희, 2위 김대중…이승만 기여 크지않아”(2025년 5월20일 송고)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진중권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진중권

[연합뉴스 사진]

◇ 진중권 광운대 교수

—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누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나.

▲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세 분이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본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에 성공했다. 독재를 했지만 그 체제가 18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민중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뤘고, 산업사회를 정보화 사회로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을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네트워크로 전환했다. 두 군사정권(전두환·노태우 정부)은 경제를 시장주도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과거의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역사적 과제를 수행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삶] 진중권 “대통령중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이 한국 만들어”(2022년 11월14일 송고)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종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김종인

[정한솔 촬영]

◇ 김종인(전 개혁신당 상임고문)

— 역대 대통령 중 성과가 있었던 분은 누구인가.

▲ 이승만은 대한민국 기초를 만드는 데 공을 세웠다. 정부를 수립하고 6·25전쟁을 겪었으며 한미 방위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그분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파행했고 말년에 좋지 않은 국면을 겪었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경제발전의 업적을 남겼다. 그도 세상이 변하는 것을 몰라서 불행을 겪었다. 전두환은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한 사람이다. 노태우 당시에는 소득분배가 잘돼서 중산층이 많이 생겼다. 경제 인프라도 건설됐다.

— 김영삼 대통령은 어떠했나.

▲ 김영삼 정부는 외환위기에 빠져서 한국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도 평가할 만한 게 없다고 본다.

— 역대 대통령의 공통적 특징은 무엇인가.

▲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후보가 된 후, 당선된 후 등의 생각이 각각 다르다. 일관성이 없다.

— 그 원인은 무엇인가.

▲ 계획과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 역대 대통령들이 계획이 없었다는 것인가.

▲ 대부분이 그렇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외인 경우가 이승만과 박정희다. 박정희는 이 나라를 빈곤으로부터 해방하겠다는 철두철미한 생각을 가졌다.

—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 용의주도하게 철저히 준비한 사람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 정치의 수준이 떨어지면 나라의 수준도 낮아진다. 일본을 보면, 자민당 혼자서 몇십 년에 걸쳐 집권하다 보니 나태해지고 정치인 수준이 떨어졌다. 일본 경제도 동반해서 쇠잔해졌다.

[삶] 김종인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준비안된 사람들이었다”(2022년 11월21일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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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윤여준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윤여준

[촬영 이건희]

◇ 윤여준(전 민주당 대통령선거 상임총괄선거대책위원장)

— 김영삼은 어떤 사람이었나

▲ 경청하는 스타일이었다. 본인의 뜻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해도 불쾌한 안색을 하거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는 어휘력이 없어서 욕을 할 줄도 몰랐다. 욕을 한다는 것은 ‘한심한 놈’이라는 표현이었다. 아주 심한 욕은 한을 길게 빼서 ‘한∼심한 놈’이라고 하는 정도다. 일각에서는 그가 머리가 나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직관력이 발달했고 사안에 관해 설명하면 빨리 이해했다. 다만 정보를 글이 아닌 청각을 통해 입수하는 사람이었다. 신문의 가십도 비서관이 읽어줄 정도였다.

— 김영삼 대통령 업적에 대해 평가한다면.

▲ 김 대통령은 군인이 정치에 못 들어오도록 한 사람이다. 이것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본다. 금융실명제도 김 대통령의 배짱이 없으면 시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외환위기를 맞은 것은 큰 과오다. 김 대통령은 경제를 잘 몰랐기에 보좌하는 사람들이 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많이 몰랐나.

▲ 경제부총리가 보고하면 김 대통령은 다른 생각을 했다. 표정을 보면 금방 그것을 알 수 있다. 경제수석이 “한국 경제가 이미 연착륙했다. 각하의 탁월한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고 아부성 발언을 해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나 경제수석의 보고가 끝나도, 보고가 종료됐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김 대통령은 경제 부총리와 경제수석에게 경제를 맡겼는데, 그들의 보고가 제대로 됐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미지 확대1994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이 신임 윤여준 공보수석에게 임명장 수여하는 장면
1994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이 신임 윤여준 공보수석에게 임명장 수여하는 장면

[연합뉴스 사진]

— 대통령이 경제를 모른다면 그 자체가 결정적 하자 아닌가.

▲ 경제부총리가 보고를 제대로 안 하면 경제수석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경제수석은 경제부처로 다시 돌아갈 사람이다 보니 적당히 동조해준다. 그래서 대통령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 물가, 환율, 경상수지, 무역수지가 무엇인지는 이해해야 한다.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알았다면 외환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 민자당 대표 당시 김영삼이 현직 대통령인 노태우에게 폭언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 어느 날 저녁 무렵에 김 대표가 청와대의 노 대통령을 찾아왔는데,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김 총재는 안기부가 자신을 모략한다고 해서 화가 난 것인데, “내 손에 죽고 싶으냐”는 김 총재의 발언이 문밖에서 들렸다고 한다. 당시 이 말에 분노한 대통령 비서관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면서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다. 김영삼 대통령은 성격이 강해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민족의 대결 구도를 화해 구도로 바꾼 것이 김대중-김정일 6.15 정상회담이다. 이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해줘야 한다. 기초생활보장 제도는 급하게 만드는 바람에 당시에는 허점이 있었으나 서민을 위해 그런 제도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는 인정해줘야 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중진들은 내가 한나라당에 위장 취업했다고 비난했다.

[삶] 윤여준 “관료 실력없어도 줄대어 출세…YS때부터 공직기강 붕괴”(2023년 4월10일 송고)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찬종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박찬종

[촬영 이다빈]

◇ 박찬종 변호사

— 김영삼은 어떤 사람인가.

▲ 그는 김대중과 원내 대표 경쟁을 네 번 했는데 모두 이겼다. 사람을 끄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그가 경제를 몰랐다는 점이다. 경상수지 같은 경제용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당시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보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OECD에 가입하려면 외환의 문을 넓혀야 하는데, 그것이 경상수지 악화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한테 직접 설명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다. 김영삼이 경제를 제대로 알았다면 외환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고 본다.

— 김영삼에게 인간적 매력은 있었나.

▲ 사람을 아들이나 조카 대하듯이 하니 사람을 끌었다. 밥을 먹으면서 상대방의 심기를 살필 줄 알았다.

이미지 확대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전주 유세에서 연설하는 김대중 후보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 전주 유세에서 연설하는 김대중 후보

[연합뉴스 사진]

— 김대중은 어떠했나.

▲ 김영삼과 반대라고 보면 된다. 드라이한(건조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여러 명이 식사하러 가면 김영삼은 다른 사람한테 돈을 줘서 계산하도록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카운터에 걸어가서 “얼마요?” 하면서 돈을 직접 헤아려 줬다. 두 사람은 그런 차이가 있다.

— 알려진 대로 김대중은 지적인 사람인가.

▲ 외환 문제로 인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보류하자는 의견을 내면 김영삼은 “씰데 없는 소리”라면서 역정을 내겠지만 김대중은 “다시 한번 이야기해봐”라고 한 뒤 들어보고는 “그것도 그럴 것 같네. 좀 생각해보자”라고 물러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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