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지하상가·지하철 선로 사이 지하공간 1천평 40년 만에 개방
‘세월의 증거’ 종유석에 석순…만들어진 용도는 여전히 베일
서울 시내 한복판. 그것도 늘 지나다니는 서울광장의 지하에 이런 거대한 비밀 공간이 있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번잡하고 화려한 도심 아래 수십년간 잠자고 있던 고요한 지하 세계를 마주하는 듯 해 자못 신비스럽기도 했다.
도시의 비밀스러운 지하 세계로 가는 ‘포털’은 뜻밖에 서울 장난감도서관이었다.
2호선 을지로입구역 지하보도에 있는 장난감도서관 입구로 들어가 시민이 이용하는 장난감 대여실을 가로지르니 5평 남짓의 창고 같은 방에 도착했다.
이 방은 장난감을 쌓아놨던 곳이었는데 평소 일반 시민도 들락거렸다고 한다.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안쪽에 또 다른 문이 나왔다.
이 작은 문을 열자마자 진회색의 콘크리트로 된 거대한 공간이 눈앞에 확 펼쳐졌다. 알록달록한 장난감이 쌓인 공간과 무채색의 거친 공간이 문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었던 셈이다. 다른 차원으로 순간 이동한 듯했다.
장난감박물관 관계자는 “창고방엔 시민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지하공간으로 통하는 문은 평소 출입금지 표시를 붙여놨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서울광장 13m 아래에 숨겨져 있던 이 약 1천평의 지하공간을 40년 만에 시민에게 공개하기로 하며 5일 언론에 먼저 공개했다.
폭 9.5m·높이 4.5m에 총길이 335m, 3천182㎡에 달하는 이 공간은 을지로 지하상가와 지하철 2호선 선로 터널 사이에 있다.
위로 지하상가인 시티스타몰이 있고 아래로는 지하철이 을지로입구역∼시청역 사이를 달린다. 현재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이 공간을 지하철 유지관리 용도로 쓰고 있다.
정확히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한 걸음씩 비밀의 공간으로 발을 내딛을수록 주위는 더욱 어두워졌다. 곳곳에 콘크리트 원기둥이 하중을 버티고 있었고 천장과 벽엔 배수관이 보였다. 걸을 때마다 수십년간 쌓였을 바닥의 흙먼지가 날렸다.
잠시 걷다 보니 ‘쿵쿵쿵쿵’하며 공간 아래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진동도 그대로 느껴졌다. 간만에 외부인을 맞은 지하 세계는 터널 구조 특유의 메아리로 답했다.
이 인공 터널의 세월을 증명하는 종유석과 석순도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갔더니 기둥 없이 탁 트인 공간도 있었다. 이후 지하통로 왼편으로 설치된 콘크리트 경사로와 철제 계단으로 올라가니 우리가 익히 아는 지하철 1·2호선 시청역의 환승 통로로 나올 수 있었다.
현재는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청 지하 시민청과 1호선 시청역을 거쳐야 2호선 시청역으로 갈 수 있는데 이곳을 통하면 2호선 역사끼리 바로 이어진다.
시민들도 이 공간을 직접 ‘탐험’할 수 있다.
시는 ‘숨은 공간, 시간 여행:지하철 역사 시민탐험대’를 신청받아 8일부터 23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시티스타몰∼숨은 공간∼시청역∼도시건축전시관을 해설사와 함께 1시간가량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yeyak.seoul.go.kr)에서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다.
서울시는 추후 이 공간을 ‘지하철 역사 혁신프로젝트’ 시범 사업지에 포함해 도심 속 명소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6일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숨은 공간, 숨 불어넣기:지하철 역사 상상공모전’을 열어 시민의 아이디어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