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걸 알면서 창문 깼을 모습 눈에 선해”…버스기사 슬픈 발인

“모두에게 따뜻했던 사람”…숨지기 직전 아내에게 “버스에 물 들이차” 사실상 작별인사

 

19일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희생된 버스 기사 A씨의 90대 노모가 운구차에 실린 그의 관 위에 엎어져 흐느꼈다.

A씨의 아들은 애써 울음을 참으며 노모를 떼어내고 차 문이 닫힐 때까지 말없이 관을 바라봤다.

발인 전 엄수된 마지막 제사에서는 유족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고, 3일간 빈소를 함께 지킨 그의 동료들은 지친 몸을 곧게 세우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유족이 영정사진을 들고 제사실에서 나오자 A씨의 유족과 동료들은 말없이 뒤를 따랐다.

안치실 앞에서 그의 관을 마주한 유가족들은 입을 틀어막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고, 동료들은 짧은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떨궜다.

A씨의 지인들은 그를 “누구에게나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자신을 35년 지기 친구라고 소개한 김 모씨는 “친구들의 가족도 자기 가족처럼 챙겼던 사람이었다”면서 “명절마다 빠지지 않고 우리 집에 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고, 내가 일이 있어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땐 대신 우리 어머니를 찾아 보던 사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친구 김 모씨는 “사고 당시 친구가 승객들에게 창문을 깨드릴테니 탈출하라고 했다던데, 그 사람은 정말로 승객들이 다 나가는 걸 보고 제일 마지막에 탈출했을 사람이었다”면서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러고 있었을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남다른 공감능력 만큼이나 봉사활동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하지 않는 날에는 초등학교 앞에 나가 학생들의 등굣길 안전을 책임졌고, 1년에 한 번씩은 장애인들과 노인들을 자기 차에 태우고 전국 여행을 시켜줬다고 한다.

원래는 택시 기사였던 A씨는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던 친구 최 모씨의 추천으로 10년전 같은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그는 출근 시간이 새벽 5시 반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3시부터 나와 사무실 정리를 하고 마당을 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궂은일을 도맡아서 하는 성격 덕에 금세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몇 년 전에는 전국 단위 승객 안전 최우수 평가도 받았다.

그는 그렇게 베테랑들만 몬다는 747번 버스의 운전대를 잡게 됐다.

최씨는 “747번 버스는 외지인들을 싣고 청주공항과 오송역 사이를 오가는 노선이라 회사의 얼굴과 같은 버스였다”면서 “그 버스는 그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게 죽음으로 이어졌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침수된 도로를 피해 지하차도로 들어갔다고 그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이만큼 승객 안전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알아달라”고 하소연했다.

친형 이 모씨는 “동생이 아내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버스에 물이 들어차고 있다며 혹시 모를 작별 인사를 했다더라”면서 “미호천이 넘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는데 당국이 왜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14명이 숨졌고, 이 버스에서만 운전자 A씨를 포함해 9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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