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4회 국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긴 연휴를 맞아 외부 일정을 최소화한 채 몰두한 정국 구상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연휴 첫날이던 지난 3일 이산가족 등을 만난 것을 제외하면 9일까지 공개 일정 없이 조용히 연휴를 보내고 있다.
오는 10일에도 하루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최장 열흘간의 ‘징검다리 연휴’에 휴식을 취하며 난마처럼 얽힌 국내외 국정 현안 해법 찾기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연휴 중에도 중요한 국정 상황은 빠짐없이 보고받으며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이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복구 등 만만찮은 과제가 산적한 만큼 이 대통령은 연휴 기간 다듬은 정국 구상을 토대로 다음 주부터 다시 국정 페달을 밟는 데 가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추석 연휴 이틀째인 4일 한복 차림으로 영상 메시지를 통해 명절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의 부담을 덜어내고 모두의 살림살이가 더 풍족해질 수 있도록 국정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리 산업과 나라가 다시 성장하고 힘차게 도약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 ‘트럼프 변수’ 속 APEC 준비부터 관세 협상까지 준비 총력
이 대통령의 최대 당면 과제는 3주 앞으로 다가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차질 없이 준비하는 한편 지지부진한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마무리 짓는 일이다.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다자외교 역량을 입증하고, 이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관세협상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상황은 예측불허의 변수투성이다.
APEC 정상회의의 ‘주연’ 격인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부터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한국에 입국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치기’나 1박 2일 일정으로 한미·미중 정상회담을 소화한 뒤 APEC 정상회의 본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출국할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전반적인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예단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세협상 역시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앞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만났지만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선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5일 김용범 정책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공동 주재로 긴급 통상현안 대책 회의를 열었고, 이날도 강훈식 비서실장을 포함한 3실장 주재로 구윤철 경제부총리, 김정관 장관 등과 회의를 열어 추가 협의를 이어간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의 내용을 보고받은 뒤 남은 연휴 기간 관세협상의 돌파구 등을 고심할 것으로 관측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의자 높이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자 이를 직접 도와주고 있다.
◇ ‘다카이치 집권’에 한일관계 시험대…대북 대화도 ‘먼 길’
이 대통령 앞에는 외교·안보·통상 관련 녹록지 않은 현안도 쌓여 있다.
연휴 중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재가 선출, 조만간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후임자로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카이치 총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등 이시바 총리와는 결이 다른 극우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다만 그는 이번 달 야스쿠니신사 참배 보류를 검토하는 등 일단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 대통령은 이시바 총리와의 ‘셔틀 외교’로 안착시킨 한일 협력 기조를 이어가기 위한 소통 방안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재와의 관계 설정에 따라 과거사와 협력을 구분하는 ‘두 트랙’ 대일 외교 기조는 물론 한미일 협력을 통한 한반도 안보 관리 전략도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대북정책도 숙제다. 이 대통령은 연휴 첫날 이산가족이라는 인도적 문제를 고리로 북한을 향해 대화 촉구 메시지를 보냈지만, 긍정적 반응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일 공개된 무장장비전시회 기념 연설에서 “한국 영토가 안전한 곳으로 될 수 있겠는가”라며 위협성 발언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10일 열리는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서 나올 김 위원장의 메시지 등을 분석하고 향후 대응 방향 등을 조율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연합(EU)까지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를 50%까지 인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심화하는 보호무역 기조에 대한 대응 역시 이 대통령 앞에 놓인 난제 중 하나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왼쪽부터), 정청래 대표, 강훈식 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이 22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유엔총회 참석차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탑승한 공군 1호기의 이륙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당정 일체로 “시끄럽지 않은 개혁” 성공 여부 관건
국내적으로는 ‘당정 일체’ 기조를 유지하며 개혁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 이 대통령의 최대 과제로 꼽힌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1년 뒤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고, 이달 1일에는 국군의 날을 맞아 “불법 계엄 잔재 청산”을 언급했다.
중단 없는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한 만큼 연휴 이후로도 정부 중심의 검찰개혁 후속 논의와 군 개혁 등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개혁의 핵심 동력인 당정 관계에 대해서는 다소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난 6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가끔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에) 속도나 온도에 차이가 난다”며 “시끄럽지 않게 개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역시 4일 유튜브 방송에서 개혁의 방법론과 관련해 “저항이 줄어야 성공한다”고 언급했다.
개혁의 과정이 과도하게 이목을 끌고 이로 인해 반발을 초래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인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7일 페이스북에서 “상기하자 조희대의 난, 잊지 말자 사법개혁”이라고 적었다. 상대적으로 ‘개혁의 속도’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개혁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당정 간 이견이 없는 만큼 방법론상의 온도 차를 줄이며 파열음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향후 숙제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 야권 ‘냉부해 공세’ 가열에…민생 중시 기조로 차단 모색할 듯
국민의힘은 국가전산망 먹통 사태, 연휴 기간 방영된 이 대통령 부부의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방송 등을 빌미로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대통령실은 방송 녹화가 K푸드 홍보라는 공적 차원에서 이뤄진 데다 국정자원 화재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사이에 시간을 내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이 무리한 공세를 편다고 본다.
다만 이 대통령 입장에서 국정의 핵심 쟁점이 아닌 논란이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데다 야당과의 협치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초점을 민생으로 돌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전히 복구율 20%대에 그치는 국정자원 화재 수습에 총력을 기울여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일이 첫손에 꼽힌다.
다시 상승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 가격을 관리하고 주식시장의 상승세는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를 통해 정체 추이를 보이는 국정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향후 개혁 동력에도 지렛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