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의날 기념 연설…”한국 여성이 진정 원하는 건 인식 변화”
청계광장·이화여대 등서 성평등·차별철폐 촉구 행사
“2년 전 제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누군가가 ‘한국 여성들은 출산 파업 중’이라고 얘기해줬어요. 그 이후에 각종 정책이 나왔지만, 출산율은 계속 떨어졌죠.”
진 맥킨지 BBC 서울 특파원은 8일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 주최의 세계 여성의날 기념행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의 작년 4분기 합계 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다”며 “특히 서울에선 거의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아이를 낳으면 현금을 주는 등 각종 지원책이 나왔지만, 그 이후로도 줄곧 출산율이 하락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그는 전국을 돌면서 많은 여성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오후 8시에 퇴근하고 월요일 출근을 위해 주말에 링거를 맞는 한 여성은 아이를 키울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며 “특히 자녀를 가지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고 많이 걱정했다”고 전했다.
한 워킹맘은 과거 ‘남녀는 평등하다’고 배웠던 사실과 달리 남편은 아이 돌봄과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은 탓에 ‘독박 육아’를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러한 상황만 아니라면 임신과 육아를 기꺼이 택했을 여성들이 많았다”며 “결국 긴 노동시간, 불공평한 육아 분담 등이 출산을 꺼리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자신이 과거 겪었던 치열한 교육 경쟁을 아이들은 겪지 않길 바랐다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국 여성들은 가정과 일에서 하나만 택하길 바라지 않는다”며 “그들이 원하는 건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유연한 근무 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경제가 지난 50년간 고속 발전하면서 여성을 고등 교육과 일터로 밀어 넣고 야망을 키워줬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는 것이 저출산 해결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날 행사에서 연사로 참석한 타마라 모휘니 주한 캐나다 대사는 “성평등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윈윈게임'”이라며 “이러한 전환을 이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남성의 참여'”라고 말했다.
그는 “성평등이란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여성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남성의 권한을 박탈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며 “남성을 희생하거나 이들을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유엔여성기구가 진행한 이날 행사에는 정부, 외교계, 기업계, 학계 관계자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정심 유엔여성기구 성평등센터 소장은 “성평등과 포성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포용을 고취하라’를 슬로건으로 한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전국 곳곳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날 서울 청계광장에서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 어두울수록 빛나는 연대의 행진’을 주제로 제39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했다.
다양한 여성·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이번 행사에선 부스 20여곳에서 피켓 만들기, 기념품 나눔, 인증사진 남기기 등의 이벤트가 진행됐다.
이어 여성연합 관계자들은 평등하게 일할 권리와 성폭력 없는 일상 보장, 주 35시간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3.8 여성 선언문’을 낭독했다.
참여자 전원이 보신각과 광화문광장 등을 행진하는 퍼포먼스도 벌였다.
민주노총 세계여성의날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도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외치며 서울 종로에서 대학로 방면으로 행진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 경동시장과 청량리 종합시장, 이화여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숙명여대 등을 돌면서 5천여명의 여성에게 장미꽃을 나눠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여건 개선과 참정권 보장을 상징하는 “빵과 장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1908년 3월 8일을 기념해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된 것에 착안한 이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