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입담과 인품 덕에 ‘개그계 대부’로 불리던 코미디언 전유성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대한민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전유성은 폐기흉 증세가 악화하면서 이날 오후 9시 5분께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과거 폐렴을 앓았으며 코로나19 후유증으로도 고생해왔다. 최근에는 기흉으로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까지 받았으나 증상이 악화해 입원한 상태였다.
최근 야윈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돼 건강 이상설이 불거졌고 지난달 부산코미디페스티벌 부대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건강 악화로 직전에 불참했다.
고인은 생전에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으며, 측근들과 장례 절차에 대해서도 직접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라벌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연출과를 졸업한 뒤 인기 MC 겸 코미디언이었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방송 원고를 써주는 일종의 코미디 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1969 TBC ‘쑈쑈쑈’의 방송 작가로 데뷔했으며 코미디언으로 전향해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에서 재치 있는 촌철살인 입담을 선보이며 시청자에게 얼굴을 알렸다.
1990년대에는 SBS ‘좋은 친구들’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코미디 경연 ‘전유성을 웃겨라’를 선보였고, KBS 대표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개국 공신으로도 꼽힌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만 국한되지 않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양한 공연 무대도 선보였다.
성악가와 개그맨이 함께 하는 코믹콘서트 형식의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 반려동물을 위한 ‘개나소나 콘서트’ 등이 대표적이다.
2011년에는 경북 청도군에 국내 최초 코미디 전용 극장인 철가방극장을 열었고 4천400회가 넘는 무대를 선보였다.
또 아시아 최초 코미디 축제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명예위원장을 맡으며 더 많은 코미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도 개그맨 지망생, 무명 개그맨들을 발굴하고 사비를 털어가며 지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양락, 이윤석은 물론 김신영, 황현희, 김민경 등 여러 개그맨 후배가 전유성의 지지 덕에 활동했다고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희극인이 코미디언이라고 불리던 시대에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1980년대 초 널리 쓰이던 ‘희극인’이나 ‘코미디언’이라는 표현이 재미없고 낡았다고 생각한 전유성은 ‘개그’와 ‘맨’을 결합해 ‘개그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이 단어는 널리 쓰이고 있다.
가장 많은 책을 쓴 코미디언으로도 꼽힌다.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 ‘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 등 17권을 집필했다.
2007년에는 방송계에서 은퇴해서 경북 청도에 내려갔다가 청도 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을 두고 군청과 갈등을 빚으면서 2018년 전북 남원으로 거처를 옮겨 여생을 보냈다.
고인은 1993년 가수 진미령과 결혼했다가 2011년께 뒤늦게 이혼 사실을 알렸다. 유족으로는 딸 제비씨가 있다.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 고인이 생전 활발히 활동했던 KBS 일대에서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