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이 음반 프랑스 뮤지션들이 작업한 건데, 엄청 희귀한 협업이야.”
“이걸 여기서 보네. 이 바이닐(Vinyl·LP)은 얼마까지 가능합니까.”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콘퍼런스룸 E에는 토요일 오전부터 물밀듯이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날 국내 최대 규모 LP 축제인 ‘제12회 서울레코드페어’가 성황리에 개막했다. 이틀간 열리는 이 행사는 2011년 처음 개최된 이래 2017년 1만명, 2018년 2만명의 방문객을 모으며 몸집을 키웠다.
올해 행사에서는 1960~70년대 인기 가수 김상희의 LP 2종과 밴드 산울림의 동요 전집 등이 재발매돼 처음으로 음악 팬들에게 소개됐다.
장기하, 머드 더 스튜던트, 제이클레프, 다브다 등은 이번 행사를 통해서만 구매할 수 있는 한정판 LP를 내놔 관심을 모았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1970∼80년대 국내 가요 희귀 음반 판매대도 마련돼 방문객을 유혹했다.
산울림 12집 미개봉 LP는 150만원의 가격표가 붙었고, 유재하 1집 ‘사랑하기 때문에’ LP는 25만원이었다. 유재하 1집은 행사 시작 1시간여 만에 재고 2장 가운데 1장이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매대 안쪽 벽에는 1970년대를 풍미한 가수 김정미의 ‘이건 너무하잖아요’와 ‘갈대’가 수록된 LP가 따로 전시돼 있었다. 이 음반은 가격표도 붙어 있지 않았다.
판매자 측에 이유를 묻자 “이 LP는 1975년도 초판으로 매우 희귀한 것”이라며 “가격은 300만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말을 맞아 문주란, 펄시스터스, 서울훼미리 등 1970∼80년대 캐럴 음반도 판매됐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1990년대 인기 듀오 듀스 코너와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나카모리 아키나(中森明菜)·다케우치 마리야(竹內まりや) 등 J팝 스타들의 음반을 파는 코너도 있었다.
또 1952년 창립돼 71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장수 대중음악 레이블 오아시스 레코드는 회사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를 마련했다.
오아시스 레코드는 1950년대 이난영·남인수·백년설, 1960년대 은방울자매·송대관·나훈아, 1970년대 조영남·정훈희·윤복희, 1980년대 주현미·서울훼미리 등의 음반을 낸 곳으로 그 자체가 한국 가요사다.
오아시스 레코드는 나훈아의 데뷔 음반 ‘내 사랑·낳은 정 기른 정'(1968)과 현미의 ‘현미 힛트시리즈'(1963) 등의 원본 마스터 릴테이프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레코드페어 관계자 역시 “세계 최대 음반 시장인 미국에서 매년 들려오는 LP 시장 급성장 소식은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와는 무관해 보였다”며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LP 시장도 눈에 띄게 성장했다. 뚜렷한 LP 판매 관련 통계가 없는 상황에서 서울레코드페어 방문객 수나 행사 열기 등은 한국 LP 산업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단서”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시작 한 시간 만에 방문자 수가 1천명을 훌쩍 넘겼다. 입장하려는 방문객이 긴 줄을 이루기도 했다.
‘LP 열풍’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옛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도 불어닥쳤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온 김단우(18) 양은 이번 주 수능을 치르고 친구와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그는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LP 플레이어를 사 주신다고 해서 오늘 지브리와 디즈니 등 LP 5장을 총 25만원에 구매했다”며 “LP 특유의 ‘지지직’ 하는 따뜻한 사운드가 유튜브로 음악을 들을 때와는 다르고, LP 음반은 마치 굿즈처럼 희소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