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프랑스 정부가 의회의 불신임을 받아 해산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현재 프랑스 정부를 이끄는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지난해 12월 정부 수장에 임명된 이후 여러 차례 불신임 위기를 맞았다.
그때마다 야당 내에서 그나마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좌파 사회당과 극우 국민연합(RN)의 조건부 신임 기조 덕분에 생명줄을 이어왔다.
그러나 정부의 내년도 긴축 재정안을 두고 두 정당마저 바이루 총리에게 등을 돌리겠다고 나서면서 그 어느 때보다 내각 해산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루 총리가 의회의 불신임을 받아 내각이 해산할 경우 뒷수습은 마크롱 대통령의 몫이다.
26일(현지시간)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3가지 선택지를 갖고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은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것이다. 다만 집권 여당이 의회 내 다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야당의 협조를 얻어 정부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을 찾는 게 관건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조기 총선 결과 범여권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잃자 총리 물색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총선 1위를 차지한 좌파 연합이 자체 후보를 제시했으나, 이들에게 정부의 키를 맡길 수 없었던 마크롱 대통령은 고심 끝에 우파 성향의 미셸 바르니에 총리를 지명했다.
바르니에 총리는 그러나 지금의 바이루 총리처럼 2025년도 예산안을 둘러싸고 야권과 갈등을 겪다 임명 3개월 만에 의회 불신임을 받아 물러났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후 범여권 인사이자 자신의 오랜 우군이었던 바이루 총리를 정부 수장에 앉혔지만 역시 야권의 환영을 받진 못했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차기 총리 후보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 장관의 이름이 종종 거론돼 왔다. 전 보수 공화당(LR) 출신인 르코르뉘 장관은 극우 진영과도 대화할 수 있는 능숙한 정치가로 평가받는다.
의회 내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이 온건 좌파 사회당 인사를 총리로 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이 경우 사회당에 상당한 정책적 양보를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새 총리 임명 대신 아예 의회를 해산하는 경우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이 1위를 차지하자 극우 세력의 세 확산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프랑스 헌법상 대통령은 1년에 한 차례만 하원 해산을 선포할 수 있다. 이 기간이 지나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해산권을 회복한 상태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동안 추가 의회 해산 가능성을 배제하며 2027년 임기 만료 전까지는 조기 선거를 피할 것이라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들은 최근 RMC 라디오에 대통령이 “여전히 동일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지만 “헌법상 권한을 먼저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며 묘한 여지를 남겼다.
다만 현재 마크롱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20%대로 낮은 점을 고려하면 조기 총선을 치른다 해도 범여권이 의회 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오히려 지금보다 야당 의석만 더 늘릴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조기 총선을 치르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의 경쟁자이자 극우 국민연합의 지도자인 마린 르펜 의원은 25일 엑스(X·옛 트위터)에 “이제 (의회) 해산만이 프랑스 국민이 자신의 운명, 즉 국민연합과 함께하는 회복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당의 중진 보리스 발로 의원도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소집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지이자 가장 실현 가능성 없는 카드는 본인의 사임이다.
극좌와 극우 진영은 마크롱 대통령이 정치적 교착 상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나 26일 공개된 르주르날뒤디망슈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직은 선출된 목적을 수행하고, 국가를 위해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내가 취임 첫날부터 지금까지 해 온 일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할 일”이라며 사임 가능성을 단호히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