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노이, 미국 최초로 현금 보석 제도 완전 폐지
JB 프리츠커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가 현금 보석 제도 철폐를 골자로 하는 총 764쪽 분량의 사법개혁안에 서명한 뒤 포즈를 취했다. [JB 프리츠커 미국 일리노이 주지사 페이스북 페이지 / 재판매 및 DB 금지]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 일리노이주가 빈부에 따른 차별 논란을 빚어온 현금 보석(cash bail) 제도를 폐지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시카고 언론과 뉴욕타임스, 미국 공영라디오(NPR) 등은 일리노이주가 미국 내 첫 번째로 현금 보석 제도를 완전히 철폐하는 주가 된다며 23일(현지시간) 이같이 보도했다.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민주)는 전날 현금 보석 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안에 서명 후 “가난한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부자를 선호하는 불균형적 제도를 종식하려는 것”이라며 “구조적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실질적인 절차”라고 평가했다.
총 764쪽 분량의 사법개혁안은 일리노이 주의회 흑인 의원들의 모임인 ‘블랙 코커스’가 발의했으며 지난달 하원과 상원을 통과했다.
개혁안의 핵심인 보석금 제도 폐지안(Pretrial Fairness Act)은 2023년 1월 발효될 예정이다.
발의자들은 “새 법안이 발효되면 판사는 범죄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일체의 보석금을 책정할 수 없게 된다”며 일리노이주의 현금 보석 제도 폐지 법안(완전 철폐)이 부분 폐지를 시도한 다른 주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대부분의 사법 지구는 여러 형태의 현금 보석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 제도 아래에서 용의자 또는 피고인이 체포되면 법원이 보석 심리를 통해 석방 조건으로 지불해야 하는 보석금 규모를 책정한다.
일정 액수의 보석금을 현금으로 지불할 경우 미구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지만, 보석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공소 기각 때까지 혹은 재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구금된다.
현금 지불 능력에 따라 재판 이전 구금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하지만 현금 보석 제도가 폐지되면 보석금을 내지 못하는 형사 피고인도 유죄 확정 때까지 무죄로 추정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구금되지 않고, 누구나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찬성론자들은 “현금 지불 능력이 있으면 구속 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돈이 없으면 구금된 상태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불균형적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범죄자들이 체포 직후 곧바로 지역사회로 복귀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고, 경찰의 범죄자 체포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또 “폭력 범죄자들과 갱 단원들을 위한 법안이다. 범죄와 폭력이 늘고 있는 때 사회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며 반발했다.
앞서 캘리포니아주는 2018년 50개 주 중 처음으로 현금 보석 제도를 부분적으로 폐지하는 법을 제정해 2019년 10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발로 시행 여부가 작년 11월 주민투표에 부쳐졌고 결국 부결됐다.
뉴욕주는 2019년 4월 경범죄자 및 비폭력 중범죄 혐의 피고인에 대한 현금 보석 제도 폐지 법안(부분 폐지)을 통과시키고 작년 1월 발효했으나 이후 총기폭력과 살인 등 중범죄가 급증하며 반발이 일자 6개월 만에 대상을 대폭 제한했다.
이밖에 뉴저지주도 유사 법안을 만들었다가 시행 규모를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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