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서양과 태평양, 멕시코만 등에서 한반도 면적(22만3천617㎢)의 약 11배에 달하는 해역에 걸쳐 신규 원유·가스 시추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 시추 확대를 공약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이 조치를 뒤집겠다고 공언함에 따라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석유 및 천연가스 시추와 그로 인한 피해로부터 (미 본토의) 동서 해안, 멕시코만 동부, 알래스카의 북베링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며 약 6억2천500만에이커(252만9천285㎢) 면적의 미국 연안에서 신규 원유·가스 개발을 금지하는 조처를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해안에서 시추를 하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곳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서 해당 수역에서의 시추가 “국가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수적이지 않다.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 위기가 전국의 공동체를 계속 위협하고 있고, 청정 에너지 경제로 전환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아이들과 손주들을 위해 이 해안을 보호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10년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대규모 원유 유출 사고로 11명이 숨지고 해양 환경이 오염된 사실을 상기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 사이에서 택일할 필요는 없다”면서 “우리의 바다를 건강하게 하고, 해안선을 회복력있게 만들며, 거기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과, 에너지 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조처는 제정된지 72년 된 연방 법률인 ‘외대륙붕법'(Outer Continental Shelf Lands Act)에 기반하고 있다.
이 법은 미국의 특정 수역을 석유 및 가스 개발로부터 영구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광범위한 재량을 대통령에게 주고, 개발금지 지역 지정을 철회할 수 있는 명확한 권한은 대통령에게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차후에 이번 조치를 뒤집으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CNN은 보도했다.
석유와 천연가스의 대대적인 시추 확대를 공약하며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으로 복귀하기 2주 전에 이번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 환경친화적 에너지·산업 정책을 강조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친환경 정책 성과를 지키기 위해 ‘대못박기’를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조처를 뒤집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조치에 대해 “웃기는 일”이라며 “나는 (취임 후) 즉시 금지를 해제할 것이다. 내게는 금지를 해제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집권 1기 때인 지난 2017년, 연안 시추를 제한한 전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조처를 뒤집고 행정명령을 통해 북극과 대서양 등에서 연안 시추작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시추 확대 행정명령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