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국기 게양식…’군대 찬양·서방 악마화’ 교육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16개월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서 전쟁을 정당화하고자 애국심을 강조하고 군대를 찬양하는 내용의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최근 한 달간 러시아 교육자와 사회학자, 학부모, 학생들을 인터뷰하고 각 학교 공지와 지역 뉴스 등에 올라온 자료를 검토한 결과 러시아 정부가 4만여개 공립학교에서 군사·애국 교육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일례로 러시아 극동 지역 학교에서는 ‘에이(A)는 군대(Army), 비(B)는 형제애(Brotherhood)의 머리글자’로 알파벳을 가르치는 새로운 버전의 ‘ABC’를 쓰고 있다. 한글로 치면 ‘기역은 군대의 기역, 니은은 나라사랑의 니은’이라고 가르치는 식이다.
한동안 러시아 정부는 정권에 반기를 들지 않도록 학교 교육에서 정치적인 내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중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젊은 남성이 싸우러 나서도록 설득하고자 학교 교육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군사·애국을 강조하는 ‘세뇌 교육’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할 때부터 시작돼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욱 강화됐다.
러시아 교육과학부 군사·애국적 주제를 담은 단계별 수업 계획과 실제 사례를 포함한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시나 춤, 연극을 이용해 러시아 대외 정보기관의 역사를 설명하는 식이다.
러시아의 독립노조인 ‘교사연합’의 대표로 망명 생활 중인 다니일 켄은 이러한 교육이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모든 수준을 포함한다”면서 “그들(러시아 정부)은 모든 아이와 학생들을 전쟁 지원에 직접 참여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시작된 ‘중요한 대화’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은 학교 교육 전반에 군국주의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교육 당국은 각급 학교에서 매주 월요일 오전 8시에 집회를 열어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국기를 게양하고, 이후 교실에서 러시아 역사의 중요 사건 등을 주제로 한 시간 동안 수업을 하도록 했다. 퇴역 군인들이 교실로 찾아와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한다.
‘중요한 대화’ 외에도 ‘용감함의 교훈’, ‘우리 안의 영웅들’과 같은 보충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조국과 군인들의 위업을 찬양하는 시를 쓰도록 권장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싸울 당시에 했던 것처럼 군인들에게 보낼 양말을 뜨게 하는 등 지나치게 복고적인 내용도 있었다.
서방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강조하는 수업을 하는 곳도 있다. 현지 매체가 올린 한 영상에서는 학생들이 주먹을 흔들며 ‘나는 러시아인이다’라는 곡을 부르고 이를 이끄는 교사는 “나토를 몰아내자”고 외치는 모습이 담겼다.
러시아 초등학생들이 “사기꾼들이 러시아에서 달아나고 있다. 그들은 서방에서 살 곳이 있다. 깡패들과 남색자들…”과 같은 문구를 암송하는 영상도 여럿 눈에 띈다.
다만 러시아 정부는 애국·군사 교육 프로그램을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반전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중요한 대화’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은 지역의 교육행정가에게 맡기고 애국심 고취 교육을 꺼리는 학부모는 자녀에게 수업을 빠지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어느 정도 여지를 뒀다.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러한 애국·군사 교육에 대한 반감이 강해 수업을 듣지 않으려는 학생·학부모가 적지 않고 전쟁을 아예 언급하지 않으려 하는 교사들도 많다고 NY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