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부터 3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예고를 받은 유럽연합(EU)이 협상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EU 27개국은 1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외교이사회 통상 부문 회의에서 대미 협상을 이끄는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집행위원에게 협상 진행 상황을 공유받고 향후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하반기 EU 의장국 덴마크의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외무장관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모든 회원국이 미국의 ’30% 관세’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회원국들은 또 27개국을 대표해 협상 중인 집행위원회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필요하다면 단호하고 비례적인 대응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라스무센 장관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율 통보 서한 발표 이틀 만에 열린 이날 장관급 회의에서는 당혹과 실망이 역력했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 쪽에서는 합의 타결에 매우 근접했다고 느끼고 있었다”며 트럼프 대통령 서한에 유감을 표명했다.
EU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대미 협상에 진전이 있다면서 큰 틀의 협상 방향을 규정하는 이른바 ‘원칙적 합의’ 체결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했었다. 언론에도 자신들은 한국, 일본 등과 달리 ‘트럼프 서한’ 수령 대상이 아니며 이르면 수일 내에 합의 타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EU에 협상 불발 시 8월 1일부터 30%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서한을 보냈다. 더욱이 30%는 당초 4월 상호관세가 처음 발표됐을 때 EU에 적용한 20%보다 높은 수준이다. EU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그럼에도 EU는 ‘무역 전면전’을 피하려 8월 1일까지 협상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소셜미디어(SNS)에 게재되기 전 EU에 관련 내용을 통보한 점 등으로 미뤄 아직은 협상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이날 오후 늦게 미국 측과 다시 통화할 예정이라면서 “원칙적 합의에는 아주 근접했고 현재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품목에 관한 상호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협상 중”이라고 설명했다.
EU는 협상테이블에서 지렛대가 될 보복조치 준비에 속도를 내되 불필요한 자극은 삼가자는 분위기다.
집행위는 이날 회원국들에 720억 유로(약 116조원) 규모의 이른바 2차 보복조치 패키지를 제안했다.
항공기, 자동차 부품 등 특정 미국산 상품에 고율 관세 부과를 목표로 하는 2차 패키지는 애초 최대 1천억 유로(약 161조원) 규모로 계획됐으나 회원국 및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과정에서 축소됐다.
이 패키지가 실행 가능한 수준이 되려면 회원국 승인을 받은 이행법이 채택돼야 한다.
14일 0시부로 자동 발효 예정이던 1차 보복조치 역시 8월 초까지 추가로 연기됐다.
협상력 극대화를 위해 미국을 상대로 오히려 충격요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라스무센 장관은 “동의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미국과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강경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는 협상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 등 더 강경한 대응 수단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CI는 EU와 그 회원국에 대해 제3국이 통상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되면 서비스, 외국인 직접 투자, 금융시장, 공공조달, 지식재산권의 무역 관련 측면 등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조치다. 전례 없이 강력한 무역 방어 수단이라는 점에서 ‘바주카포’로도 불린다.
그러나 전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ACI는 비상 상황을 위해 마련된 도구다. 우리는 아직 그 상황에 이르진 않았다”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