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때부터 쓰다 암 걸려”…소송 회피 전략에 차질 예상
파산제도 이용해 합의 추진했지만 3만8천여명 원고 설득 어려워질 수도
미국의 거대 헬스케어 기업 존슨앤드존슨(J&J)이 자사 베이비파우더의 발암 논란을 둘러싼 소송에서 패했다.
로이터,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단은 암 환자 앤서니 에르난데스 발데스(24)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여 J&J에 1천880만 달러(약 240억원) 배상을 평결했다.
발데스는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하다가 석면 때문에 걸리는 암인 중피종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그의 어머니 애나 카마초는 아기 때부터 어린이 때까지 발데스에게 베이비파우더를 많이 썼다고 배심원단 앞에서 울며 증언했다.
활석을 주원료로 하던 J&J의 베이비파우더는 석면이 일부 섞여 중피종이나 난소상피암을 유발한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배심원단은 발데스에 치료비 보전, 고통에 대한 배상을 하도록 결정했으나 J&J에 훨씬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부과하지 않았다.
J&J는 베이비파우더와 발암이 관계 없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항소 방침을 밝혔다.
에릭 하스 J&J 부회장은 “이번 평결은 존슨즈 베이비파우더가 안전하고 석면도 안 들어있으며 암을 일으키지도 않는다는 수십 년에 걸친 독립적인 과학적 평가에 어긋난다”고 항변했다.
이번 평결은 베이비파우더 발암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J&J의 전략에 중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J&J는 ‘매출 감소’를 이유로 들며 미국, 캐나다에서 활석을 원료로 쓰는 베이비파우더의 판매를 2020년 중단했다.
제품에 석면이 없다면서도 활석 대신 옥수수 전분을 쓰기로 했고, 활석이 든 베이비파우더는 올해 말까지 전 세계에서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J&J는 베이비파우더에 함유된 석면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환자들의 소송 수만건을 회피할 전략도 세웠다.
세계 최대 보건의료 제조업체인 J&J는 법적 책임을 질 사업부를 분리해 자회사 LTL 매니지먼트를 만들어 베이비파우더 소송을 떠넘겼다.
LTL은 창립 후 미국 연방 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 11)에 따라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첫 신청은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이유로 기각됐지만 LTL은 이에 굴하지 않고 두 번째 신청을 냈다.
파산보호를 신청한 기업은 즉각 청산을 피하고 파산법원의 감독하에 영업과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회생을 시도한다.
LTL은 3만8천여건에 이르는 소송과 향후 제기될 소송을 일괄적으로 해결하겠다며 89억 달러(약 11조3천억원)를 내놓겠다고 제안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이 재판을 거치지 않고 기금을 통해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제안의 수용 여부를 포함한 파산법원의 심리 과정에서 기존에 제기된 손배소는 일제히 보류됐다.
그러나 파산법원은 발데스의 경우 살아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재판을 그대로 진행하도록 했다.
J&J는 이날 배상 평결이 나오면서 손배소를 제기한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칼 토비아스 리치먼드대 법학과 교수는 “재판으로 1천8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면 89억 달러 제안에 안 끌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평결이 J&J에는 좋지 않은 게 확실하고 아마 협상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J&J와 LTL은 재판에 가면 일부는 거액을 받고 일부는 한 푼도 못 받는 ‘복불복’이 발생한다며, 파산법원 합의금을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나눠 받는 게 현명할 것이라고 원고들을 설득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