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무엇이냐’ 본질적 논쟁 위해 고의로 출품
AI기술 두고 논란 격화…일부 “인간경험 해칠 말세” 경고
독일의 한 사진작가가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이미지를 국제 사진전에 출품한 뒤 우승작으로 선정되자 뒤늦게 AI 작품임을 밝히고 수상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1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 출신 사진작가 보리스 엘다크젠은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SWPA) 크리에이티브 오픈 카테고리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SWPA는 소니가 후원하고 세계사진협회(WPO)가 후원하는 세계 최대 사진 대회 중 하나다.
엘다크젠은 이 대회에 젊은 여성과 노년의 여성의 모습이 담긴 흑백 이미지를 출품했다. ‘전기공'(The Electrician)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이미지 속 노년의 여성은 젊은 여성 뒤에서 그의 어깨를 붙잡고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엘다크젠은 해당 작품이 수상작으로 뽑히자 그제야 AI로 만든 사진임을 밝히면서 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엘다크젠은 사진으로 봐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사진계에서 폭넓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의 영역은 AI 이미지가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은가? 아니면 (내 수상은) 실수였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내가 수상을 거부함으로써 이 논쟁이 더 가속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엘다크젠은 AI 이미지가 권위 있는 국제 사진전에서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이를 ‘역사적 순간’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AI 이미지와 사진은 이런 시상식에서 서로 경쟁해서는 안 된다. 둘은 서로 다른 실체다. AI는 사진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상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WPO 대변인도 “그(엘다크젠)가 수상을 거부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우리는 그와의 활동을 중단하고 그를 이번 대회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번 일이 AI 기술 사용과 그 의미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주목됐다면서 일각에서는 AI 등 기술이 인간의 경험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히기 직전이라는 종말론적 경고가 나오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최근 온라인상에는 허리춤이 강조된 흰색 롱패딩을 입고 바티칸시국의 성 베드로 광장을 산책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경찰관에게 둘러싸여 수갑이 채워지고 끌려가는 모습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실제와 구별이 어려운 AI 생성 이미지가 유포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이 진짜 사진인지 구별하는 일은 이미 매우 어렵다면서 가짜 정보를 퍼뜨리려는 기관 등에서 이 같은 기술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