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과일인 키위.
많은 사람 머릿속에 키위는 뉴질랜드 특산물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요즘 중국이 여기에 숟가락을 얹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1997년 뉴질랜드 생산자들이 설립한 협동조합에 뿌리를 둔 세계 최대 키위 브랜드 ‘제스프리'(Zespri)는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하는데요.
뉴질랜드와 출하기가 다른 제주도 등에도 키위를 심어 ‘제스프리’ 이름을 달고 1년 내내 공급하고 있죠.
우리가 흔히 먹는 그린키위 품종인 헤이워드(Hayward) 역시 뉴질랜드가 원산지이자 전 세계 생산량 중 90%를 책임지고 있는데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제스프리는 지난해 키위 판매로 39억 뉴질랜드 달러(한화 약 3조 1천억 원)를 벌어들여 이 과일이 한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뉴질랜드와 중국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키위가 있는데요, 최근 나온 ‘썬골드키위'(썬골드)입니다.
2010년 키위궤양병(PSA)이 퍼지면서 심각한 피해를 본 뉴질랜드에선 특히 껍질이 얇고 속살이 황금빛을 띠어 인기를 끌던 골드키위류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요.
이때 제스프리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비타민C가 풍부하고 달콤하며 병해에 강한 신품종을 자체 개발, ‘썬골드’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놨습니다.
대박을 터뜨린 썬골드는 어느덧 그린키위 수출량을 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자국 키위 산업을 다시 일으켰고 제스프리는 재빨리 썬골드 독점소유권을 각국에 등록했죠.
그러던 2016년 중국에서 썬골드 농장을 봤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조사 결과 이는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알고 보니 한 중국인 남성이 썬골드 접가지를 뉴질랜드 작은 마을에서 중국 쓰촨성으로 밀반출, 새순을 틔워 팔았던 건데요.
뉴질랜드 고등법원은 이 남성에게 우리 돈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령했지만, 중국 당국 도움 없이 불법재배에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었습니다.
제스프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을 비롯해 허가 없이 썬골드를 기르는 면적은 2019∼2021년 두 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상황이 급속히 악화하자 제스프리는 중국 내 무허가 재배업자들과 손잡는 방법을 택했는데요.
이들에게서 일 년 간 썬골드를 시범 구매한 뒤 제스프리 브랜드를 붙여 팔아보자고 제안한 거죠.
사실 키위의 원조는 1904년 뉴질랜드에 들어왔던 중국산 작물 ‘양타오’로 당시엔 ‘차이니즈 구스베리’라고 불렸는데요.
뉴질랜드가 자국의 명물 ‘키위새’ 이름을 따 ‘키위’라고 명명, 대량 재배·수출하면서 ‘키위 강국’으로 거듭나게 된 겁니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 현 정치·경제적 상황이 더해지면서 뉴질랜드 정부가 중국 측 ‘특허 도둑질’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지금 뉴질랜드가 썬골드를 둘러싼 분쟁을 본격화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인데요.
지역 발전과 빈곤 타개에 힘쓰고 있는 중국이 자국의 썬골드 농사를 단속할 의지가 없다는 점 역시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죠.
가오 훙즈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국제경영대학원 부교수는 “중국 농가가 대규모로 키우고 있다는 것은 지방 정부가 묵인해주고 있다는 뜻”이라고 짚었습니다.
약 120년 전 중국 과일을 들여와 자국 특산물로 만든 뉴질랜드가 자신들의 ‘효자상품’을 몰래 훔쳐 간 본고장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는 반응도 나옵니다.
김지선 기자 김지원 작가 김민주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