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경제 문제,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이민 급증 및 낙태권 등 핵심 정책 이슈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초박빙 판세가 계속되면서 유권자들의 표심과 맞물린 이들 3대 이슈가 대선 승패를 가를 수 있는 중대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대선 최대 정책 이슈인 경제 문제와 관련,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중산층 강화를 목표로 ‘기회의 경제’를 키워드로 하는 공약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규모 감세와 고율 관세를 앞세운 ‘트럼프노믹스’를 토대로 유권자를 공략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제 분야에서는 유권자들로부터 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인플레이션 완화 등 실물 경제의 개선으로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며 그 격차는 좁아지고 있다.
연방 차원의 낙태권 인정 판결인 ‘로 대 웨이드’가 폐기된 이후 처음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낙태권 이슈를 앞세워 여성, 진보 유권자 등을 결집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전반의 반(反)이민 정서에 기대, 불법 이민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 해리스, 중산층 겨냥 ‘기회의 경제’ 부각…트럼프, 감세·관세 중심의 ‘트럼프노믹스 2.0’
지난 8월 전당대회의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기회의 경제’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해리스 부통령은 중산층과 중소기업에 혜택을 주는 각종 공약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노동자 등 서민을 겨냥해 ▲자녀 1인당 세액 공제 3천600달러로 확대 ▲자녀 출산 첫해 6천달러 세금 감면 신설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등을 공약했으며 자녀 세액 공제 등으로 1억명 이상의 미국인이 혜택을 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소기업 창업 비용에 대한 세금 공제 금액 10배로 확대 ▲이른바 오바마케어에 대한 세금 공제 확대 ▲연방 차원의 가격 폭리 금지 등도 공약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와 함께 법인세를 현 21%에서 28%로 인상하겠다고 밝히는 등 대기업과 부자에 대해서는 증세 기조를 분명히 한 상태다.
해리스 부통령은 유세 등을 통해 “나는 미국 국민과 가정이 겨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고 번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기업 등을 포함해 사상 최대의 보편적 감세와 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중심으로 하는 ‘트럼프노믹스 2.0’을 예고한 상태다.
그는 법인세에 대해서는 자신이 재임 중인 2017년 21%로 내린 것에 더해 추가로 15%로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초과 노동 및 팁에 대한 면세 ▲소셜시큐리티(노령연금) 면세 ▲ 연방 및 지방정부 세금(SALT) 공제 한도 철폐 등 전방위적인 감세를 공약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정책 기조로 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업의 미국 투자 견인, 제조업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기업 감세 방침과 함께 관세 인상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대한 보편적 관세 최대 20% 부과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60% 관세 ▲멕시코 생산 중국 자동차에 100~200% 관세 등의 계획도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를 ‘새 미국 산업주의’로 규정하고 ‘제조업 르네상스’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 실물 경제 개선 속 경제 이슈서 ‘트럼프 우위’ 약화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 이슈로 꼽히는 경제 문제 대응에 있어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항상 더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해리스 부통령과의 격차가 줄어드는 추세다.
경제 문제에 대한 대응을 누가 더 잘할 것으로 보느냐는 폭스뉴스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리스 부통령보다 5%포인트 더 높은 지지를 받았으나 이는 올 3월 조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했을 때의 15%보다 크게 낮아진 수치다.
마리스트대학의 여론조사에서도 6월 9%포인트 격차가 최근에는 3%포인트 격차로 줄어든 상태다.
경제 문제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위가 약화한 배경으로는 민주당의 후보가 바이든 대통령에서 해리스 부통령으로 교체와 함께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실무경제 개선 등이 거론된다.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로 등판한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 우선 이른바 ‘바이드노믹스(바이든 대통령 경제 정책 전반)’ 대신 자신의 경제 공약인 ‘기회의 경제’를 띄우면서 바이든 정부와 일종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나아가 중산층 강화 등 경제 발언에서 메시지 전달력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더 낫다는 평가도 있다.
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던 핵심 경제 이슈 중 하나인 인플레이션도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목표로 급격하게 금리를 올렸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달에는 물가가 안정됐다는 판단에 따라 금리를 0.5%포인트 낮추기도 했다.
대표적인 체감 물가 지표인 휘발유 가격도 2일 미국자동차협회(AAA) 집계 기준으로 갤런(약 3.78L) 당 평균 3.19달러로 당초 우려보다는 양호한 상황이다.
휘발유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이유로 2022년에는 갤런당 5달러를 돌파하면서 바이든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을 촉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말 공개된 경합주 대상의 블룸버그통신 여론조사에서 생필품 비용 대응 관련 질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47%)과 해리스 부통령(46%)은 거의 비슷한 지지를 받기도 했다.
◇ 트럼프는 불법 이민·해리스는 낙태 이슈로 표 결집 시도
미국의 이번 대선에서 경제와 함께 표심을 가를 이슈로 주목받는 다른 이슈는 불법 이민 및 낙태 문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가 미국 남부 국경 통제에 실패하면서 해외 감옥이나 정신병원 등에 수감됐던 사람들이 대규모로 미국에 불법 유입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이들이 강력 범죄를 일으키고 미국인 일자리를 잠식하는 동시에 주택 가격도 끌어올리는 등 미국이 직면한 주요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국경 담당 차르’였던 해리스 부통령이 이 문제를 야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를 향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주장하면서 취임시 ▲사상 최대 규모의 추방 실시 ▲남부 국경 폐쇄 ▲국경 장벽 건설 재개 등의 방침을 밝혔다.
CBS 방송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지난달 조사에서 각각 50% 이상이 불법 이민자의 추방에 찬성하는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초강경 이민정책 공약은 대선 판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회의 국경 보안 강화법안을 사실상 무산시킨 것을 비판하면서 국경 보안 강화와 인도적 이민 시스템 구축 등을 동시에 이루겠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응은 피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반대로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로우키 행보’를 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애초 전국적인 낙태 금지를 공약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으나 각 주(州)가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만 유지하면서 낙태 문제에 대한 세부 입장 표명은 회피하고 있다.
그는 동시에 공화당 지지자 등을 겨냥, 자신이 재임 중 3명의 보수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연방 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부각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반세기 동안 인정됐던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없앤 장본인으로 규정하고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선에 승리할 경우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입법화하겠다고 공약한 상태다.
CNN이 지난달 말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49%)에 대한 지지가 해리스 부통령(35%)보다 높았으나 낙태 문제에 대해서는 해리스 부통령(52%)이 트럼프 전 대통령(31%)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