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력 논란에 불을 댕긴 TV토론 파문이 블랙홀처럼 미 대선을 집어삼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은 완주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결단을 촉구하는 당내 동요가 확산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격차가 토론 전에 비해 벌어진 여론조사도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논란 진화를 위해 토론 참패 원인을 빡빡한 해외순방 일정에 따른 피로 탓으로 돌렸지만 토론 도중 거의 졸 뻔했다는 ‘천기누설’로 오히려 논란을 더 키울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계속 버틸 수 있을지는 결국 여론에 달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며칠간의 흐름이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린든 존슨처럼’…”바이든 이번 주 결단해야” 커지는 압박
민주당 소속 15선 하원의원인 로이드 도겟 의원(텍사스)은 2일 성명을 내고 36대 대통령(1963년 11월∼1969년 1월 재임)인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의 사례를 거론하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권 증진과 관련한 여러 성과가 있었음에도 베트남전쟁의 난맥상, 당내 신진후보의 부상 속에 재선 도전을 중도에 포기했던 존슨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으라고 촉구한 것이다.
연방 의원 가운데 첫 공개적 사퇴 요구가 제기된 것이어서 확산할지 주목된다.
CNN은 익명 보도를 전제로 민주당 전현직 의원과 기부자, 바이든 대통령의 오랜 측근 등 20여 명에 물은 결과, 이들 중 다수가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판단을 굳혔다고 2일 보도했다.
또한 이들 중 일부는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사퇴 결정을 이번 주에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정치권에서 ‘여당 내 야당’으로 꼽혔던 정치 거물인 조 맨친 의원도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바이든 대통령의 참모들이 만류해 이를 막았다고 이날 보도했다.
◇ “비슷한 상황 20여 차례 목격”…꺼지지 않는 논란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번 TV토론에서 재점화한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력 논란이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하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으로 유명한 언론인 칼 번스타인은 지난 1일 CNN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 바이든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익명의 소식통들이 TV 토론 때와 비슷한 상황을 “지난 1년 반 동안 15∼20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인지력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TV토론 이후에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무게감으로 바이든 진영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기밀자료 보관 혐의를 수사한 로버트 허 전 특검이 2월 조사결과 보고서에 아들(보 바이든) 사망연도를 기억하지 못한 일 등을 적시했을 때만 해도 바이든 본인의 강한 반발과 3월 국정연설에서의 활력있는 모습으로 인지론 논란이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듯 했으나 이번 TV토론 사태로 수습 불가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양상이다.
한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CNN에 “이것이 오직 한 번만 일어난 사건이었다면 (바이든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건 유일한 사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합주서 격차 더 벌어져”…미셸 오바마, 대안후보 다크호스 부상?
바이든 대통령의 ‘TV토론 참사’ 이후 여론도 요동치는 분위기다.
CNN 방송이 여론조사기관 SSRS에 의뢰해 지난달 28~30일 유권자 1천2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양자 대결 시 두 후보는 각각 43%와 4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3%포인트 이내의 차이로 전현직 대통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TV토론 직전의 여론조사들과 비교하면 간격이 커진 결과였다.
무엇보다 미국 대선 승패의 열쇠를 쥔 경합주에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비공개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민주당 슈퍼팩 ‘퓨처 포워드’의 여론조사 기관인 오픈랩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격차가 경합주 전체적으로 2%포인트가량 더 벌어졌다고 미국 인터넷매체 ‘퍽'(Puck)이 보도했다.
CNN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등 ‘바이든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민주당 인사들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가상 양자 대결 조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전원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한 가운데, 해리스 부통령의 격차가 2% 포인트로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나 바이든 대통령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을 낳기도 했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CBS방송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이 우리의 후보”라며 후보 교체론에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통신의 조사에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설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을 10% 포인트 이상 격차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셸 여사는 대선 출마 의향이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이렇게 나오면서 그의 거취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완주의지’ 바이든, 백악관도 적극 대응…’해외순방 피로 탓’ 혹 떼려다 혹 붙인 격?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TV토론 부진은 해외 순방에 따른 피로 누적 때문이었다고 적극 해명하며 완주 의지를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D.C.인근 버지니아주 매클린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토론을 앞두고 외국을 잇달아 방문한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다”며 토론에서 보인 부진한 모습에 대해 사과했다고 백악관 풀 기자단은 전했다.
그러나 토론 당시 “무대에서 거의 잠 들 뻔했다”는 발언을 두고 부적격 논란에 더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3일엔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과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회의를 갖고 자신의 고령 리스크에 대한 우려 불식에 나설 계획이며 금주 중 민주당 지도부와의 회동도 준비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주중 보도될 ABC 뉴스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건재를 확인시키고, 내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자유 진영의 리더 면모를 과시한다는 복안이다. NATO 정상회의 계기에 기자회견에도 나설 예정이다.
아울러 오는 5일 위스콘신주에 이어 주말에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를 찾는 등 본격적인 경합주 유세도 재개할 예정이다.
백악관도 바이든 대통령 고령 우려에 이례적으로 강하게 대응하고 나섰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제기되는 우려에 대해 알고 있다”며 “대통령 본인이 언급했듯 (27일 TV토론에서) 나쁜 밤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재기할 줄 아는 사람이고,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계속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바이든 대통령이 토론 당일 약을 복용했는지에 대한 질문엔 “어떤 감기약도 먹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민주당이 후보 교체론을 잠재우기 위해 오는 8월 19∼22일 열릴 전당대회보다 한 달 앞서 공식 후보 지명을 하는 식으로 쐐기를 박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