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식음료와 약물에 적색 3호(Red No.3) 색소 사용을 금지한다고 15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했다. 과학자들이 이 색소가 동물의 암 유발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지 30여 년 만에 이뤄진 조치라고 CNN은 보도했다.
적색 염료 3호는 화학적으로는 에리스로신(erythrosine)으로 알려진 석유 추출 합성 색소 첨가제다. 식품과 음료에 밝은 체리색 붉은색을 부여하는 데 사용된다. 풍선껌, 사탕, 시리얼, 딸기 맛 밀크셰이크, 딸기 맛 요구르트, 젤리는 물론 일부 감기약과 비타민에도 첨가된다.
이번 조치는 공익과학센터(CSPI)와 환경워킹그룹(EWG) 등 여러 공익단체가 암과 연관성을 언급하며 제출한 2022년 11월 청원에 따른 조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2023년 10월 이 첨가물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FDA에 따르면 식품 및 약물에 적색 3호를 사용하는 제조업체는 각각 2027년 1월 15일과 2028년 1월 18일까지 제품을 다시 제조해야 한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식음료도 해당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FDA의 이번 조치로 미국은 1994년 일부 마라스키노 체리 제품을 제외하고 적색 3호의 사용을 금지한 유럽연합(EU)의 식품 기준에 가까워졌다. 일본과 중국 호주는 적색 3호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젤리, 과자, 사탕, 껌, 아이스크림, 빵, 떡, 초콜릿, 소시지, 주스, 탄산음료, 소스, 젓갈류 등의 20여 품목에 제한적 사용이 허가되고 있다.
적색 3호 색소는 최소 수십 가지의 사탕, 식음료 제품에서 발견되지만 인기 있는 브랜드들은 이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거나 이미 사용을 중단한 상태다. 사탕회사 페라라의 경우 2023년 초부터 이 첨가제를 단계적으로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다. 페라라의 대변인은 이메일을 통해 전체 제품의 10% 미만이 이 첨가제를 함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신 일부 회사는 더 건강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적색 40호(Red No.40)를 사용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 9월 어린이들의 행동 및 주의력 장애의 연관성에 대한 우려로 공립학교에서 판매되는 식품과 음료에 적색 40호 사용을 금지했다. 생쥐의 면역계 종양 성장 촉진과 잠재적인 연관성을 발견한 연구가 있었고, 발암 물질로 알려진 벤젠이 이 색소에 포함돼 있다는 연구도 있었다.
FDA의 이번 조치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연방 식품, 의약품 및 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의 델라니 조항(Delaney Clause)을 선택적으로 적용한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과다. 델라니 조항은 “섭취 시 동물이나 사람에게 암을 유발하는 색소 첨가제를 FDA가 승인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FDA는 1990년 적색 3호가 쥐에게 고용량으로 발암성을 일으킨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나오자 화장품 및 국소의약품에 적색 3호 색소의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식품에 대한 허가 취소로 이어지진 않았는데 이 색소가 인간의 암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FDA는 1969년 사람이 아닌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이 성분의 최초 승인 이후 여러 차례 안전성을 재평가했지만 적색 염료 3호와 인간 암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FDA는 “인간에 대한 적색 3호의 관련 노출 수준은 일반적으로 수컷 쥐에서 나타난 효과를 유발하는 수준보다 훨씬 낮다”며 “식품과 약물에 적색 3호를 사용하면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주장은 이용 가능한 과학적 정보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첨가제와 동물 암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한 2012년 보고서를 포함해 몇 가지 다른 연구에서 적색 3호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다. 같은 해 연구자들은 인공색소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의) 주요 원인은 아니지만 일부 사례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진단 한계치로 어린이들을 몰아붙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2021년에는 캘리포니아 환경 보건 유해성 평가 사무소(OEHH)는 적색 3호 염료가 주의력 저하와 같은 행동 문제에 취약한 어린이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또한 당시 식품 염료의 안전한 섭취에 대한 연방 차원의 기준이 어린이의 뇌 건강을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FDA는 이번 결정이 과학적 연구결과 때문이 아니라 법적 해석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델라니 조항은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 암을 유발하는 경우도 적용하게 돼 있는데 그동안 이를 간과해왔던 것을 시정한다는 취지다.
미국 뉴욕대의 글로벌 공중보건대학원의 제니퍼 포메란즈 교수(공중보건 정책 및 관리)는 “델라니 조항에 따르면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서도 암이 발생하면 식품에서도 사용을 금지시켜야 한다”며 “1990년 식품에서 적색 3호를 금지하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공익과학센터의 식품 첨가물 및 보충제 수석과학자인 토마스 갈리건 박사는 FDA의 이번 결정으로 “적색 3호의 규제 역설이 끝났다”면서도 “동물의 암 유발이 밝혀진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식품에 남아 있도록 허용한 고장 난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